더 많은 행복을 위하여- 김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2023년 02월 13일(월) 22:00 가가
주변에 괴로운 일이 생겼더라도 사람들은 ‘내 일’이라고 느껴야 팔 걷어붙이고 발 벗고 나선다. 내게 닥쳐야 갈 길을 찾고, 할 일을 한다. 내 손톱 밑에 가시는 아파도 남의 심장 썩는 것은 모르니까. 내 잇속을 챙기면 빙그레 웃고, 내 손해가 생기면 목소리 높여 따지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는 하다.
국가에는 많은 국민이 있다. 국가가 개인의 잇속과 손실을 하나하나 따지지 못한다. 그래서 대표를 뽑는다. 구(기초) 의원, 시(광역) 의원, 국회의원이 그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을 모아 대신 외치고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찾는다. 적어도 민주주의 논리는 그렇다.
그런데 뽑힌 그들이 ‘대표로서’ 살피지 않고 ‘자기 잇속만’ 따진다면? 뽑은 사람은 망연(茫然),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자실(自失), 정신이 나가서 멍~하다. 망연자실은 시민들을 삥등그리게 만든다.
그럴수록 그들은 잇속을 잘 챙길 수 있다. 챙긴 잇속으로 권력을 더 얻고, 어느덧 가시굴레(가스라이팅)로 국민들에게 돌아온다. 더 많은 시민의 행복을 찾으라고 뽑았는데, 의원님들이 더 많은 권력을 얻게 된다. 그러면 시민은 굽실거리고, 의원들은 으스댄다.
의원들은 뽐내려고 나서지 않았다고 말하고, 시민들은 호의호식(好衣好食)하라고 뽑지 않았다. 가문의 영광을 실현하라고 뽑아준 것도 아니다. 적어도 이렇게들 말한다.
오래 전, 더 많은 국민의 행복을 찾는 정치가가 있었다. 1988년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되어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총재,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는 ‘3당 합당’을 해서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든다.
1990년 1월, 마포의 한 호텔에서 통일민주당 해체 행사를 연다. 김영삼 총재는 ‘구국의 차원에서 통일민주당을 해체합니다, 이의 없습니까? 이의가 없으므로 통과됐음을···’까지 말하는 순간!
갑자기 입을 앙다물고 오른손을 번쩍 들어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해야 합니다”라고 소리친 사람이 있었다. 원칙과 상식의 상징인 노무현 국회의원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말은 막혔고, 3당 합당은 차질 없이 이뤄졌다.
3당 합당으로 노태우 정권은 기반을 닦았다. 개혁은 물 건너갔고,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민주당(총재 김대중)은 지역주의 틀에 갇혔다. 믿음을 저버린 정치인들은 살아남았지만, 정치 앞에서 한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민주 사회는 이의 제기가 있을 때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여 합의점을 찾는다. 설득과 양보가 없으면 합리와 이성은 사라지고, 다툼만 남는다. 민주주의는 결과만 보지 않고, 과정과 기회 제공도 살핀다. 같은 편, 다른 편만 따지면 진영 논리와 선동만 남는다. 토론과 설득이 없으면 ‘몰래’ 하고, ‘몰래’는 공정성과 책임감을 잃는다.
“이의 있습니다”라고 말한 노무현은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 돈과 권력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 경제는 힘이 빠져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그래서 국토 균형 발전 계획을 세우고, 혁신도시를 만든다. 더 많은 국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한때 호남에서 외치면 전국의 이슈가 되었다. 정의롭고 상식적인 외침이었으니까. 이제 외치는 의원도, 외치는 언론도 찾기 힘들다. 민주주의가 잘 펼쳐진다는 것인지, 외칠 말이 없을 만큼 정치가 잘 된다는 것인지 우리 같은 우수마발(牛수馬勃: 소 오줌과 말 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먹고 사느라 끽 소리 못 하는 사람 많다. 좀 먹고 산다는 사람도 술잔에 불평과 불만을 녹여 제 배 속으로 털어 넣는 모습, 곳곳에 보인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아파도 남의 썩어 가는 심장도 살필 줄 아는 정치가가 그립다.
그런데 뽑힌 그들이 ‘대표로서’ 살피지 않고 ‘자기 잇속만’ 따진다면? 뽑은 사람은 망연(茫然),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자실(自失), 정신이 나가서 멍~하다. 망연자실은 시민들을 삥등그리게 만든다.
오래 전, 더 많은 국민의 행복을 찾는 정치가가 있었다. 1988년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되어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민주정의당 노태우 총재,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는 ‘3당 합당’을 해서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든다.
1990년 1월, 마포의 한 호텔에서 통일민주당 해체 행사를 연다. 김영삼 총재는 ‘구국의 차원에서 통일민주당을 해체합니다, 이의 없습니까? 이의가 없으므로 통과됐음을···’까지 말하는 순간!
갑자기 입을 앙다물고 오른손을 번쩍 들어 “이의 있습니다, 반대 토론해야 합니다”라고 소리친 사람이 있었다. 원칙과 상식의 상징인 노무현 국회의원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말은 막혔고, 3당 합당은 차질 없이 이뤄졌다.
3당 합당으로 노태우 정권은 기반을 닦았다. 개혁은 물 건너갔고,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민주당(총재 김대중)은 지역주의 틀에 갇혔다. 믿음을 저버린 정치인들은 살아남았지만, 정치 앞에서 한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민주 사회는 이의 제기가 있을 때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여 합의점을 찾는다. 설득과 양보가 없으면 합리와 이성은 사라지고, 다툼만 남는다. 민주주의는 결과만 보지 않고, 과정과 기회 제공도 살핀다. 같은 편, 다른 편만 따지면 진영 논리와 선동만 남는다. 토론과 설득이 없으면 ‘몰래’ 하고, ‘몰래’는 공정성과 책임감을 잃는다.
“이의 있습니다”라고 말한 노무현은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 돈과 권력과 인재의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 경제는 힘이 빠져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그래서 국토 균형 발전 계획을 세우고, 혁신도시를 만든다. 더 많은 국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한때 호남에서 외치면 전국의 이슈가 되었다. 정의롭고 상식적인 외침이었으니까. 이제 외치는 의원도, 외치는 언론도 찾기 힘들다. 민주주의가 잘 펼쳐진다는 것인지, 외칠 말이 없을 만큼 정치가 잘 된다는 것인지 우리 같은 우수마발(牛수馬勃: 소 오줌과 말 똥)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먹고 사느라 끽 소리 못 하는 사람 많다. 좀 먹고 산다는 사람도 술잔에 불평과 불만을 녹여 제 배 속으로 털어 넣는 모습, 곳곳에 보인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내 손톱 밑에 가시가 아파도 남의 썩어 가는 심장도 살필 줄 아는 정치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