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들의 근원인 ‘물’ - 이창수 시인·남구 주민행복담당관 팀장
2023년 02월 08일(수) 22:00
효천1지구에서 3년 간 살게 되었다. 광주에 오래 살면서도 송암동 남쪽인 효천지구에는 올 일이 거의 없었는데 고모의 권유와 도움으로 새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아파트 옆으로 철로가 있는데 효천역까지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드나드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한 무색무취의 동네였다. 그해 늦은 가을 광주 남구청에 시간선택제로 취업하게 되었다.

오후 5시면 퇴근할 수 있어 좋았다. 6시에 퇴근하면 가뜩이나 차가 많은 백운광장을 빠져나오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지만 오후 5시에는 차가 그리 많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편리했다. 집으로 와서는 가벼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대촌천을 따라 걷는 게 일과가 되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평범한 도시 변두리에 불과했지만 들판 가운데에는 폭이 좁지만 수량이 풍부한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퇴근 후 산책은 빛여울초등학교에서 시작해 대촌천 따라 논 사이를 지나 찻길이 나오는 데서 다시 포충사 뒤쪽으로 꺾어서 괘고정수와 토종닭으로 유명한 광주정 앞을 지나 다시 들판을 가로질러 대촌천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 그 여정이 끝난다. 왕복 4킬로미터가 넘는 산책길은 우울과 당뇨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겨울 동안 매일 걷고 걷는 동안 새 운동화가 너덜너덜해져 다시 새 걸로 바꿨지만 그 신발도 금방 예전의 그것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시간이 지나자 아무 표정이 없는 것 같은 대촌천 주변으로 뭇 생명들이 하나둘 보였다. 폭이 좁고 어른 무릎보다 약간 더 깊은 수심 덕분에 잉어들이 잘 보였다. 지나다니며 큰 물고기 숫자를 세어 보기도 했다.

빛여울초등학교 옆 하천에는 물오리들이 쉰 마리 넘게 날아왔다. 봄이 오자 보리밭으로 들어가는 누런 족제비 일가와 꽃뱀도 보였다. 얼룩무늬 개구리들이 시멘트길에 올라와 나와 한참을 마주보기도 했다. 논 건너 야산 소나무 숲에는 흰 두루미가 수십 마리나 둥지를 틀었다. 인간이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거리 두기를 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복원된 것이다.

봄마다 미세먼지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던 중국발 황사도 그해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촌천 주변 강둑으로 달맞이꽃이 피고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물이 맑아지면서 하천에 사는 식물들이 다양해지고 물고기들이 더욱 늘어났다. 왜가리와 두루미도 늘었다. 새로운 생명들이 새로운 다른 생명들을 하나하나 초대한 듯싶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저녁에 나는 커다란 수달을 두 마리나 보았다. 재작년 여름 어둑어둑해질 무렵 빛여울초등학교 옆 하천에서 강아지를 닮은 동물이 헤엄치는 걸 보았다. 나는 하천 한 가운데서 수달이 마음껏 헤엄치는 걸 보다가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가 그냥 집어넣었다. 수달이 노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 무리의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좁은 대촌천에 터를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낚시꾼들은 늘어났다. 지나가는 주민들이 혀를 찼다. 담배를 꼬나물고 찌를 바라보는 강태공들이 지나간 자리는 쓰레기장이 되었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장화발로 짓밟아 낚시터를 만들었고 텐트를 가져와 날밤을 새기도 했다. 시멘트 포장길인 농로 갓길에 주차를 해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위험해졌다. 수달이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이사를 가야 했다.

두 달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관리실에서 물이 부족하니 아껴 쓰자고 방송을 한다. 동복댐 저수율이 20%대로 떨어져 당장에 큰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 생활에 큰 지장을 줄 것이라 했다. 공무원인 나도 시청에서도 ‘물 아껴 쓰기’ 캠페인에 동참해 전단지를 들고 나가야 했다. 우리보다 먼저 유럽의 다뉴브강은 바닥을 보였다. 뉴스에서는 큰 화물선이 바닥에 누워 있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영국에서는 머리를 일주일에 한 번만 감자는 캠페인이 벌어졌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책임이 크다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인과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은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근원을 돌보는 일이 우리의 가장 큰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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