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순서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3년 01월 04일(수) 22:00
부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태초부터 계속되고 있다. 누가 더 소유하고 누릴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고 억압과 착취, 폭력과 전쟁 등을 수반했다. 고대시대에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왕과 극소수의 귀족이 차지했고, 중세시대에는 왕·성직자·봉건 영주·귀족 등으로 지배 계층 수는 더 늘어났다. 인구 증가와 생산성 향상이 이를 뒷받침하면서 그들의 화려함과 사치는 계속될 수 있었다.

이러한 체계를 뒤엎은 것이 근대에 일어난 혁명이다. 부르주아들이 나선 프랑스 혁명,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킨 영국의 산업 혁명, 프롤레타리아들이 일으킨 러시아 11월 볼세비키 혁명 등이 대표적이다. 왕·성직자·귀족 등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부르주아 즉 자본가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정부의 도움을 받아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거래와 무역, 부동산을 통해 획기적으로 부를 증폭해 갔다. 여기에 과학기술 혁신, 세계 시장 개방 등이 더해지면서 천문학적인 부를 소유한 재벌, 슈퍼 갑부들이 나타났다.

세계 각국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무엇보다 경제 성장이 우선시되면서, 자본에 대한 규제는 느슨해지고 있다. 부의 독점을 원하는 자본과 그들의 금전적인 후원을 받으려는 권력의 결탁도 우려되는 수준이다. 부·직업의 대물림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계층 간 빈부 격차는 더 극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기에 수도권과 지역 간 불균형까지 더해졌다. 부유층·권력층이 수도권에만 모여 살면서 국가 정책을 결정하고, 투자 대상을 물색하며,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약자와 저소득층은 더 미약해지고, 지방은 소멸 위기 속에 방치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를 통해 올해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노동 개혁에 방점을 찍었다. 그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된다. 다만 우선순위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약자·저소득층·지방을 끌어올려 강자·부유층·수도권과 균형을 맞춰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혁의 첫 대상은 재벌, 세제, 불균형 정책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정조의 말처럼 일의 처리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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