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2023년 01월 02일(월) 00:15
일본서기(日本書紀)는 720년에 편찬된 최초 일본 역사서다. ‘일본’이라는 국명이 처음 등장하고 지배자를 ‘천황’으로 적고 있다. 워낙 설화적이고 작위적 기술이 많아 일본 학계는 일본서기에 대한 감식 능력을 기준으로 학문적 내공을 가늠하기도 한다.

일제 관변 학자들은 일본서기를 토대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을 제기했다. 야마토(大和) 정권이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내용이다. 우리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임나일본부는 아라가야(함안)에 있던 가야와 왜의 외교·무역 관리 기관에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일뿐이다.

이병도 박사는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를 들어 백제가 마한(馬韓)을 병합한 시기를 근초고왕 24년(369년)으로 봤고 공략 지역도 전남 지역 마한 잔읍(殘邑)으로 해석했다. 통설로 굳어진 마한 병합설은 1996년 복암리 3호분 96석실의 발굴로 깨졌다. 옹관묘를 주 묘제로 사용하던 영산강 토착 세력이 6세기 초까지 전통을 유지하며 독자 발전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일본서기에는 한반도 관련 기사가 많고 눈길 끄는 대목도 적잖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성왕이 50명의 병력을 이끌고 신라 관산성을 습격하다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본서기에는 성왕이 관산성을 공략하던 태자 여창을 위로하기 위해 가던 길에 기습을 당해 절명했다고 기술한다. 고작 병력 50명으로 관산성을 치러 갔을까라는 의문을 해소해 주는 내용이다. 백제가 선진 문물을 일본 열도에 전한 내용이 수록돼 있기도 하다.

전라도 5000년 역사를 망라한 사서인 ‘전라도 천년사’가 최근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전북 남원의 옛 지명을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국’으로, 장수를 ‘반파국’으로, 해남을 ‘침미다례’로 썼다는 것이다. 만약 중국측 사서에서 유사한 내용을 인용했더라면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에서 일본서기는 통째로 부정되는 금서다.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탓이다. 한 학자는 일본서기를 복어에 비유하기도 했다. 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탈이 나는.

/윤영기 체육부 부국장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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