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2022년 12월 01일(목) 00:45
나이가 들면 고유명사를 깜박깜박 잊는다고 한다. 맞어 맞어, 하는 분도 계시는데, 사실일까? 나이가 들면 관심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 특정 이름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 젊은 사람이라도 관심 분야가 아니면 고유명사를 잘 모른다.

요즘 고유명사가 어렵기는 하다. 아파트 이름도 우아하게(?) 짓는데, 오죽하면 시댁 어른들이 찾기 힘들게 짓는다는 웃음엣소리가 나왔을까? 고유명사를 잊는 건 방송사 때문일 수도 있다. 방송에서는 광고 효과나 비난 효과 때문인지 특정 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 덕분인지 방송을 하지 않는 사람도 ‘너튜브’나 ‘별스타그램’이라 부르고, ‘땡땡 밥집’이라 한다. ‘땡땡’은 동그랗다는 뜻을 가진 왜말이다.

언론이 마구 떠드는 짜깁기 낱말, 정치가 퍼붓는 뒤죽박죽 낱말, 먹물들이 만들어내는 전문용어, 정부가 섞어 내놓는 알쏭달쏭한 말들 또한 고유명사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남자답게 이겨내야지, 멈추면 안 돼!’ 울긋불긋한 가을 메길(산길)을 가는데 들린 소리다. 돌아보니 아빠가 지친 아이를 다그친다. 아이의 눈에서는 닭똥만한 눈물이 흐르고, 울음소리를 참느라 이는 앙다물었다.

‘남자다움’은 뭘까? 힘들어도 이겨내고 참는 것? 거칠고 우락부락해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가난을 이기느라 허리띠 졸라매며 가정을 이끌었던 어른들은! 군사독재의 획일화된 명령을 따르느라 행복을 반납하며 살았던 시절에는!

‘남자 새끼가 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치렛거리(액세서리)를 만드는 젊은 남자를 보고 어느 어르신이 한 말이다. 그의 말에서 ‘남자 새끼’는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새끼’라는 말은 어린 짐승을 말하는데 욕은 아니지만, 거칠게 소리 내면 욕이 된다.

일하기 편하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여자에게 ‘여성스럽게 입어야지, 그게 뭐야?’ 이런 말을 툭 던지는 사람 있다. ‘여성스러움’은 뭘까? 치마에 나풀거리는 블라우스, 굽 높은 구두? 다소곳하니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것?

여자를 그냥 일 거드는 곁꾼으로 여기거나 행사장의 치렛거리쯤으로 보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겠다.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이 아니라 ‘나다우면’ 되는 것 아닌가? 남자다움이란 말로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여성스러움이란 말로 남의 삶을 함부로 규정지어도 될까?

언젠가 거친 말다툼을 구경하는데, ‘남자답지’ 못하다고 다그치자, ‘너는 남자답냐?’고 되물으니 상대가 꼼짝 못했다. 직장 상사가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나무라자, 탕비실에서 ‘지는 여성스러운가?’ 하며 비웃는 소리를 들었다.

‘~답다’와 ‘~스럽다’는 말 앞에는 보통명사를 붙이는 게 아니라 고유명사를 붙여야 맞다. ‘남자답다’가 아니라 ‘유재석답다’ ‘여성스럽다’가 아니라 ‘오드리햅번스럽다’고 써야 한다.

보통명사를 붙여 다그치면 눈치를 보고 자신감을 잃는다. 눈치는 없어도 염치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보통명사를 붙여 평균의 잣대에 맞추려 하지 말아야 한다. ‘~답다’와 ‘~스럽다’ 앞에는 고유명사를 붙여 고유의 삶을 찾고, 고유의 행복을 쌓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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