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이중섭 소설가
2022년 10월 28일(금) 00:45
올해 추석은 여느 해와 다르게 빨랐다. 추석이면 한창이던 마늘 심는 일도 시기가 일렀다. 모든 밭일이 미뤄지니 명절을 쇠려고 귀향한 동네 형과 동생들이 자주 술 추렴을 벌였다. 밤이고 낮이고 마을 회관에서 빨리 나오라며 전화가 빗발쳤다.

술을 마시다 보면 사는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근래에 마을 누구네 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얘기, 누구네 자식이 아팠다는 얘기, 고향 사는 동생이 열심히 땀을 흘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에 다들 마음이 흐뭇했다. 여러 얘기 중에 다른 마을에 사는 선배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는 우리 또래보다 두 살 많았다. 어렸을 때는 꽤 가까운 사이였다. 어느 시기부터 연락이 끊기었는데 이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얘기가 무거워지자 다들 술잔을 들었다. 다시 유자 상표 등록 이야기, 동네 사람들의 항렬 이야기로 흘러가더니 갑자기 고향에서 생활하는 한 동생이 갈치 얘기를 꺼냈다.

“요즘 풍남 앞바다에 갈치가 많이 문답디다. 배 타고 나가면 하룻밤에 상당히 많이 잡힌대요. 선금 이십만 원만 내면 낚시 도구도 챙겨 주고, 낚시 끝나면 그 자리에서 잡은 것은 팔고 남은 것은 아이스박스에 담아올 수 있답디다.”

낚시를 좋아하는 K형이 지금 당장 알아보라고 재촉했다. 그 동생이 풍남항에 배를 가지고 있는 자기 친구에게 전화했다. 두 사람은 한참 얘기를 주고받았다. 얘기를 끝낸 동생이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선주의 얘기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보름달이 뜨는 만월이면 갈치가 입질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모두가 의아해 했다. 우리 마을은 바다가 가깝지만, 농사만 지어서 물때나 갯것들의 습성을 잘 몰랐다. 갈치가 어떻게 만월인지 알까. 만월이라도 오늘 밤처럼 구름이 끼거나 비 오는 달밤이면 혹 입질하지 않을까. 그런 날은 갈치도 헷갈리지 않을까 싶었다. 전화한 동생도 그런 생각이 들어 친구인 선주에게 물어보았다. 선주는 웃으면서 동생에게 말했다.

“그건 사람 생각이고……. 바다를 사람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네.”

무언가 부끄러운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이 얼굴을 확 달아오르게 했다. 너희 인간들,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 하는 듯 들렸다. 그 동생은 선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갈치는 심해어라 바닷물이 많은 만조 때는 바닷속 깊이 있기에 잡기기 힘들다. 물이 빠진 간조 때에 많이 잡힌다고 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바닷물이 많은 만조라 당연히 갈치잡이 배가 거의 나가지 않는다. 술도 마셨겠다, 방금 그런 이야기도 들었겠다, 다들 갈치에 대해 아는 것들을 늘어놓았다. 선주의 말을 전한 그 동생은 자기가 아는 갈치에 대해 더 얘기하기 시작했다.

갈치가 서서 헤엄을 칠 때는 꼬리지느러미가 없어 등지느러미로 움직인다. 이것 때문에 서서 움직이기에 입어(立魚)라 불린다. 마치 긴 칼들이 늘어선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동생은 갈치 새끼인 풀치로 호박 찌개를 해 먹으면 정말 맛있다며 입맛을 다셨다. 밤 내내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다들 내일 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에는 푸른 달이 퍼렇게 떠 있었다. 달 속에 투병 중인 선배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눈을 감고 잠을 자려 했지만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어릴 때 추운 겨울날 아침마다 울리던 선배 어머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갈치 사려! 맛있는 갈치 사려!”

교과서에 실린 ‘북청 물장수’의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선배의 어머니는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다. 아침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갈치를 팔았다. 갈치 사려, 하는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마을 뒤 송냇가에 나가 보았다. 송내는 어릴 때 깨 벗고 놀던 그 하천이 아니었다. 냇가 둑은 그대로인데 바닷물이 드나들던 기수 지역은 간척 공사로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흐르는 물이 모여 있는 깊은 곳에 혹 씨알 굵은 붕어가 있나 내려가 보았다. 붕어는 보이지 않고 물가에서 뱀 한 마리가 천천히 헤엄치고 있었다. 풀치만 한 뱀이 너희들 인간 따위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이 느릿느릿 물속에서 노닥이며 내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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