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만 명인인쇄광고 사장 “서남동 인쇄골목 역사 간직하고 기억하겠다”
2022년 10월 17일(월) 21:00
‘서남동 인쇄컬렉션’ 운영
전국 팔도·각국 돌며 구형 인쇄 기기·활자 등 구입
“살림 빠듯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무료 개방중

이대만씨는 10여년간 모은 수집품들을 ‘서남동 인쇄컬렉션’에 전시 중이다. 수집품 중 하나인 대형 활자판 앞에 서있는 이씨의 모습.

1960년대 북적이던 서남동 인쇄골목, 관공서와 인접해 있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질 않던 골목은 어느새 적막으로 가득찼다. 사용하던 기계들은 고물상에 팔리고 바닥에 버려지며 추억의 뒤안거리로 사라지게 됐다. 인쇄 기기가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광주의 한 인쇄소 사장은 10여년 전 하나 둘 물건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서남동 인쇄골목의 기억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명인인쇄광고의 이대만(54)사장.

현재 이씨가 운영하고 있는 명인인쇄광고 건물 윗층은 ‘서남동 인쇄컬렉션’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의 문을 열면 명함 인쇄기,타자기, 윤전 등사기,청타기 등이 마중한다. 많은 비용을 들였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된다.

‘서남동 인쇄컬렉션’에 전시된 이대만씨 소장품
이씨가 처음 인쇄업에 발을 들인 것은 고등학교 당시 경인쇄 기계 판매를 하던 친형 곁을 도우면서다. 어깨너머로 배우던 이씨는 조선이공대 공업경영과 졸업 후 명함기계를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다. 이씨와 형 모두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남동에서 인쇄 일을 하고 있는 ‘서남동 토박이’다.

동구의 서남동 뉴딜사업 일환으로 청주와 목포 타지의 기록물 박물관에 다녀온 이씨는 ‘광주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광주 시민들에게 활자를 역사를 알려보자는 생각에서 하나 둘 모은 물건들은 어느새 공간을 가득 채울만큼 가득해졌다.

“새로운 장비가 나오면 구형 기계는 버리게 됩니다. 구형 기계, 고철이 버려지는 걸 보며 광주·전남에 이런 기계가 있었다는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되는 순간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물건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았다. 빠듯한 살림에 작은 물건부터 모으기 시작했다. 타자기부터 도장 파는 기계, 부품 하나까지 모두 모았다. 심지어는 명함기기 사업 당시 판매했던 오래된 기계를 새 물건과 바꾸기도했다. 일본과 미국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소장할 만한 인쇄 기기가 있으면 경매를 통해 사들였다. 전국 팔도에 오래된 기기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달려가 기부나 구매 의사를 어필했다.

활자판을 소유한 어르신을 만나 8년 반 가량을 쫓아다니며 판매를 설득한적도 있다. 오랜시간 만류하던 어르신은 이씨의 진심을 알아보고 임종 직전 자식들에게 이씨에게 활자를 줘야 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해당 활자는 현재 인쇄컬렉션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서남동 인쇄컬렉션’에 전시된 이대만씨 소장품
‘서남동 인쇄컬렉션’에 전시된 이대만씨 소장품
본업을 병행하기에 시간과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다. 되려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기도 했고 코로나19 때는 장사도 어려운 상황에서 물건을 구매하려다보니 대출을 받기도 했다.

남들이 버리는 물건을 소중하게 모으고 큰 돈을 주면서까지 구매하는 이씨를 보고 ‘그런 걸 왜 모으냐’며 손가락질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이씨가 인쇄컬렉션 수집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에서 비롯됐다. 이를 기록하기 위해 이씨는 ‘서남동 컬렉션’과 더불어 서남동 인쇄 골목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한분 한분 인쇄소 골목을 떠나실 때마다 그 분들이 사용하시던 물건은 고철·고물이 됩니다. 서남동에서 어떤 기계가 사용됐는지, 누가 사용했고 어떤 인쇄물들을 찍어냈는지 책으로 엮어 기록할 계획입니다. 서남동 인쇄 골목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도록 사명감을 갖고 발로 뛰겠습니다”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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