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남도의 비비추를 우리 곁 화단에서 볼 수 있다면
2022년 09월 01일(목) 00:15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기 위해 나는 숲과 들 그리고 식물원과 공원, 정원과 육묘장까지 식물이 있는 모든 장소를 다닌다. 최근 우리나라에 식물 세밀화가 대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개인 육종가와 정원가로부터 개인 소유지의 특정 식물을 그려 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하는데, 이러한 연유로 방문하는 정원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식물이 있다. 소나무, 산딸나무, 목련 그리고 맥문동과 비비추다.

이 중 비비추는 추운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 정원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식물이다. 보편적인 식물은 꽃과 열매가 달리는 시기에만 우리 눈길을 사로잡지만, 비비추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잎은 겨울을 제외한 계절 내내 정원을 빛낸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정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풀이 되었다.

화훼 시장에서는 비비추를 보통 호스타라고 부른다. 비비추의 속명이 호스타이기 때문에 둘은 같은 식물이다. 비비추속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러시아, 사할린에 20여 종이 분포한다. 모두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동아시아 특산 식물이다. 이들이 우리나라 정원에 많이 식재되는 이유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고, 추위에 강한 데다 그늘과 습한 환경을 좋아하며 오랜 기간 다채롭고 푸르른 잎 풍경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지금 도시 화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옥잠화 역시 비비추속 중 한 종이다. 옥잠화란 국명만으로는 비비추와 크게 관계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옥잠’은 비비추의 중국명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며칠 전 친구가 옥잠화를 가리켜 왜 저 식물은 매번 꽃이 시들어 있냐 내게 물었다. 이들 꽃이 늘 시들어 보이는 것은 식물 탓이 아니라, 우리가 늘 옥잠화가 꽃잎을 오므리는 시간에만 옥잠화를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늦은 오후에 꽃을 열고 오전이 되면 꽃을 다시 오므린다. 혹여나 옥잠화 꽃이 늘 진 것처럼 보인다면, 밤 혹은 새벽에 꽃을 관찰해 보길 바란다.

비비추속 식물들은 봄과 여름, 가을 내내 푸르른 잎을 펼친다. 이 잎은 크기도 색도 종마다 다르다. 잎의 지름이 1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잎의 품종부터 5센티가 되지 않는 작은 잎 품종까지, 그리고 노란색·연두색·진청록색·흰색 등 잎색도 다채롭다. 우리나라 야생화는 소박하다는 편견 때문인지 비비추를 외국 식물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으나, 우리나라 고유의 비비추가 여섯 종이나 있다.

한라비비추, 좀비비추, 다도해비비추, 흑산도비비추, 일월비비추, 주걱비비추. 이 중 주걱비비추를 제외한 다섯 종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 식물이며,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흑산도비비추와 다도해비비추는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아주 귀한 지역 식물이다.

나는 흑산도비비추를 특히 좋아한다. 잎에서 유독 광택이 나며, 전라남도 흑산도와 홍도에만 분포한다. 7~8월 보라색 꽃이 곧은 꽃대에 풍성하게 달린 모습 또한 아름답다. 다도해비비추는 전남 여수, 완도 보길도를 중심으로 분포하는데, 꽃이 7~8월에 피어 다른 종보다 개화가 느린 편이다.

비비추는 종 식별이 어려운 식물이다. 그래서 학자마다 비비추속에 관한 의견이 천차만별이다. 몇 종의 식물이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형태 식별이 어렵다는 것은 식물 세밀화를 그리기에 까다로운 식물이란 이야기이기도 하다. 원종 상황이 이런데다 세계적으로 3000여 품종으로 육성되어, 비비추 연구는 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비추속을 그림으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에는 약 200여 품종의 비비추가 유통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우리나라 자생 비비추가 아닌 외국에서 육성된 품종이라는 점이다. 언젠가 행정가이자 학자인 은사님이 우리나라의 정원 문화 확산 계획의 첫 번째 목표는 우선 많은 정원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 목표는 그 정원에 외국산 식물이 아닌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식재하도록 하는 것이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 곁의 비비추는 대부분 외국에서 도입된 품종이지만, 지금처럼 우리나라 자생식물 연구를 지속한다면 언젠가는 학교와 아파트 화단과 공원, 정원, 길가에서 흑산도비비추와 다도해비비추와 같이 우리 지역명을 가진 비비추를 만날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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