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안심’이니 안심하세요
2022년 08월 25일(목) 00:15
한때 한국의 돼지 유통을 담당하거나 후원하는 곳에서 하던 하소연이 있었다.

“안심 후지 좀 팔아 주소.”

둘 다 돼지고기 부위다. 한국은 돼지든 소든 부위별 유통과 가격이 잘 나오는 나라다. 돼지머리며 발, 내장까지 알뜰하게 먹고 팔리는 나라가 흔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잡 부위와 내장 가격이 세계에서 압도적으로 비싸다. 돼지족발 가격은 타국 대비 대여섯 배 이상 갈 정도다. 순대에 쓰이는 간, 허파, 머릿고기, 창자도 비싸다. 그런데도 부위별로 선호 차이가 커서 문제가 있었다.(있다, 라고 현재형으로 쓸 수도 있다)

삼겹살과 목살 두 부위가 압도적으로 비싸다. 구이 중심 문화 때문이다. 돼지는 구우려면 지방이 적당히 섞여야 좋다. 소고기와 달리 ‘웰던’으로 바싹 굽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구이용 스테이크감으로 애용되는 안심, 등심이 한국에선 그저그런 부위다. 등심은 돈가스용으로 체면치레, 소비가 좋은 편이다. 헌데 안심은 늘 관심 밖의 부위였다. 갑자기 반전이 일어났다. 안심은 지방이 거의 없다. 단백질 중심의 다이어트, 근육 만들기에 좋다. 이런 장점이 부각되면서 가격이 오르고 한때 품귀도 벌어졌다. 어떤 유통사이트에서 크게 인기를 끌면서다. MZ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쇼핑 채널이다. 그들은 자기 몸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헬창’(헬스 매니아)이니, 하는 조어를 즐긴다. 헬스 즉 근육 만들기가 유행하는 세대다. 단백질 보조제가 불티나게 팔리게 만들었다.

닭가슴살은 전통적인 근육질 도우미다. 그것만 먹자면 지겨웠을 거다. 이때 짠, 돼지고기도 있어! 하고 나온 게 안심이다. 안심은 제법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 요리를 잘하면 촉촉한 맛도 낸다. 붉은 살코기 특유의 맛도 가지고 있다. 인기를 얻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 차별받던, 즉 수육보다 구이가 대세가 된 이후 늘 무시(?)당하던 안심의 복권이다. 돼지고기의 운명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안심과 후지를 거론했다. 안심은 안심해도 되는데 후지는 여전히 후지(?)다. 후지는 정육업자가 일컫는 전문 용어. 뒷다리란 뜻이다. 사실 다리는 아니고 엉덩이다. 엉덩이는 겉지방은 있지만 근내지방이 거의 없다. 게다가 안심과 달리 근섬유도 굵고 거칠다. 돼지 불고기를 했을 때 잘못 요리하면 질기고 퍽퍽할 수 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육절기다. 80년대 이후 보급이 늘면서 얇게 고기를 저밀 수 있게 되었다.

돼지국밥은 보통 삼겹살, 앞다리와 어깨살 등을 써 왔다. 이제는 후지도 종종 볼 수 있다. 육절기와 브라인(소금물, 양념으로 간을 들이는 기술)을 써서 뒷다리를 좀 더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뒷다리, 즉 후지로 만든 스테이크를 먹어 본 적도 있다. 퍽퍽한 후지로는 구이, 스테이크는 불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부쉈다. 숙성을 해서 만든 기술이었다. 점점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요리사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반가운 건 이유가 있다. 특정 부위 수요를 맞추려고 사육량을 계속 늘릴 필요가 줄어든다. 그 부위(주로 삼겹살)를 수입하는 양도 적어질 수 있다. 안 팔려서 냉장하거나 냉동 처리하는 양도 줄면 전기를 아껴 준다. 안 팔린 고기를 냉장 유통기한 안에 냉동해 버리는 걸 동결 처리라고 부른다. 유통이나 생산자에겐 부담이 된다. 하여튼 비선호 부위가 착착 팔려 나가고, 그렇게 되면 지금 발등의 불인 탄소 발생 저감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부위의 맛을 즐기는 재미도 있다. 후지는 잘 삶으면 얼마든지 좋은 수육감이 된다. 지방이 거의 없는 단백질 덩어리다. 미각이란 절대적이지 않다. 보들보들한 삼겹살, 목살 수육만 맛있는 게 아니다. 이런 변화는 과학자, 요리사, 자본의 힘이 필요하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대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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