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년-장필수 사회담당 편집국장
2022년 08월 24일(수) 01:00 가가
1992년 8월 24일 중국 베이징 영빈관에서 한국의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 첸치천 외교부장이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6개 항의 합의 내용에는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 불간섭,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등이 포함됐다.
첸치천 외교부장은 2003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덩샤오핑은 한중 수교 반대파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중 수교는 유익무해(有益無害)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밝혔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대만을 고립시켜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 손해날 게 없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한중 수교로 한국은 중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면서 대만과 단교를 하게 됐다.
지난 30년 동안 양국은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교역액은 47배 넘게 증가했고 수교 당시 연간 13만 명에 불과했던 상호 방문자 수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수교 당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름)였던 중국 외교 노선도 장쩌민·후진타오 시대 ‘유소작위’(有所作爲·필요한 일에 적극 나섬)를 거쳐 시진핑 시대에는 ‘대국굴기’(大國굴起·대국이 일어서다)와 ‘중국몽’을 앞세울 정도로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2016년 사드 배치와 그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 조치 이후 양국 관계는 위기를 노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나마 한중 관계를 지탱해 온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대신 안미경세(안보는 미국, 경제는 세계)로 전환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오늘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를 비롯해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열리지만 분위기는 마냥 화기애애하지 않다. 2년 전 떠난 쑨시엔위 중국 총영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4년간 광주에 머물면서 중국과의 교류 협력에 기여해 명예 광주시민이 될 정도로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양국 국민들은 역사적으로 위기가 있을 때 상유이말(相濡以沫)의 정신으로 협력했다고 강조하곤 했다. ‘장자’에 나오는 말로 연못에 물이 바짝 말라 생존의 위기에 처하자 물고기들이 거품을 뿜어 서로의 몸을 적셔 주며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 bungy@kwangju.co.kr
지난 30년 동안 양국은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교역액은 47배 넘게 증가했고 수교 당시 연간 13만 명에 불과했던 상호 방문자 수는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수교 당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힘을 기름)였던 중국 외교 노선도 장쩌민·후진타오 시대 ‘유소작위’(有所作爲·필요한 일에 적극 나섬)를 거쳐 시진핑 시대에는 ‘대국굴기’(大國굴起·대국이 일어서다)와 ‘중국몽’을 앞세울 정도로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2016년 사드 배치와 그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 조치 이후 양국 관계는 위기를 노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그나마 한중 관계를 지탱해 온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대신 안미경세(안보는 미국, 경제는 세계)로 전환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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