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아이들의 숲은 어디에 -손보미 장편소설 ‘사라진 아이들의 숲’
2022년 08월 11일(목) 00:45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에 대한 강화된 법안에 대한 극렬한 반대와 조롱이 난무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어린 나이에 스쿨존에서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아이의 이름으로 대신 불리는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어린이보호구역에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과 보호구역 안에서 안전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안전운전은 본래부터 의무였으나, 기존의 약속만으로는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법을 강화한 것이다. 어떤 어른들에게 학교 앞 짧은 거리를 30km로 달리는 게 인터넷에 굳이 댓글을 남겨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인 것이다. 또한 어떤 어른들은 강화된 법률도 줄어든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보다, 만에 하나 자신이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불안에 더 주목하는 듯 보인다. 무엇이든 거기에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아이의 자리는 없다. 그들에게 아이는 귀찮고 번잡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혹은 언제든 어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부주의한 존재거나.

손보미 장편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태도를 보다 중점적으로 다룬다. 소설의 주인공 채유형은 어릴 적 입양되어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에게 온 우편물로부터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자신의 친아버지가 방화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게 한 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은 그의 마음을 철저하게 무너뜨린다. 탐사 보도 피디인 채유형은 대중의 일회성 관심을 끌 만한 아이템을 찾는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청소년이 다른 청소년을 죽인 미성년자 살인사건.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또래를 잔인하게 죽였고, 사람들은 이 아이가 살인범이 된 현실을 다소간 자연스럽게 여긴다. 아이는 ‘그런’ 부모와 ‘그런’ 환경에서 자란 ‘그런’ 아이로 치부된다. 그런 아이가 그저 그런 비행을 저지르고 어른이 되어서도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다 그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면 그의 ‘그런’ 인생에서 범죄의 이유를 찾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작가의 철저한 플롯 구성 아래 감춰져 있던 범인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의 마음을 조종하려면, 진짜로 그 애들을 사랑하면 돼. 그것뿐이야.” ‘사라진 숲의 아이들’에서 숲은 살인의 씨앗이 자란 장소지만 아이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또 다른 진경언 형사에 의해 숲의 실체가 밝혀지고, 그저 ‘묻지 마 살인’으로 보였던 범행의 이유마저 설명되지만, ‘아이들’의 존재는 도리어 희미해지는 듯하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죽였다. 소설에서 이미 어른인 주인공부터 주인공의 혈육인 그 윗세대까지 모두 각자의 숲을 떠돌던 아이였음을 소설은 넌지시 상기시킨다. 우리 모두 아이였기에, 소설 속 아이의 존재가 각자 서 있는 방식으로 도드라지지 않아도 되었던 게 아닐까. 아직 어른들이 되기 전인 모든 사람은 어두운 숲처럼 실체를 다 알 수 없는 세계 앞에 선 보행자에 불과할 것이다.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아이들의 보행을 힘껏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잘못된 방식의 사랑이 아닌, 제대로 된 사랑으로 아이들을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말하는 소설인 것이다.

‘사라진 숲의 아이들은 손보미 작가가 앞으로 선보일 ‘진 형사 시리즈’의 시작이 되는 작품이다. 앞으로 우리가 보호해야 할 그 무엇을 찾아나설 진경언 형사를 응원하며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분명 무더운 여름을 즐겁게 지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손보미 작가 특유의 긴장감과 인물의 심리를 파고드는 언술을 만끽하는 것도 소설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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