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장형두, 광주 누문동에서 서울 망우동까지’
2022년 07월 07일(목) 00:15 가가
푸른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억새 풍경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물억새, 자주억새, 얼룩억새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장억새라는 종은 식물학자 이영노 선생이 경기도 가평에서 발견해 1964년 발표했는데, ‘장’억새라는 국명처럼 학명의 종소명도 ‘창이’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1세대 식물학자인 장형두 선생을 기리며 명명되었다.
내가 장형두 선생의 업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2년 전 우리나라 식물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연구 사업의 삽화를 맡아 그릴 때였다. 우리가 쓰는 식물 용어는 대부분 한자 용어이기에 국가 차원에서 우리말 용어를 선정해 추천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장형두 선생의 옛 기록들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이미 백여 년 전 저서 ‘학생조선식물도보’에 식물 대신 묻사리, 식충 식물 대신 벌레 먹이 묻사리를 쓰는 등 책 전반에 우리말 식물 용어를 표기했다.
장형두 선생은 1906년 전라도 광주 지금의 누문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원예학교를 거쳐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 칭해지는 마키노 도미타로에게 사사 받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정태현, 이덕봉, 석주명, 박만규와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설립해 한반도 자생식물을 연구하고, 조선 식물에는 조선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며 식물에 우리말 식물 이름 붙이기 위해 힘썼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 식물 용어로 이루어진 학생용 식물도감 ‘학생조선식물도보’를 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44세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한다. 1949년 10월 좌익 누명을 쓰고 경찰에 끌려간 후 고문받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언젠가 야생화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분들로부터 장형두 선생의 묘지가 옛 망우공동묘지인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안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 망우동이라면 내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데 지난주가 되어서야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다녀왔다. 공원에 다다랐을 때 이곳에 잠들어 있는 영면 인사의 소개 안내문을 발견했다. 그러나 안내문에 장형두 선생의 이름은 없었다. 이쯤 되니 선생의 묘지가 이곳에 있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직원분께 물었다.
“혹시 식물학자 장형두 선생님이 여기 계신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장영… 이요?”
“아니요. 장·형·두요.”
직원분은 모르는 이름이라며 안장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 주었고, 덕분에 선생의 묘지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선생의 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원 안내문에 소개된 수십 명의 영면 인사 중에는 조선총독부 초대 산림과장 출신으로 우리나라 조림에 힘썼던 일본인 사이토 오토사쿠와 산림과 직원이었던 아사카와 다쿠미가 소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두 분 모두 우리나라에 푸르른 숲을 남겨 준 것은 사실이지만 장형두 선생이 식물학계에 남긴 업적이 두 분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형두 선생은 관료도 아니었고, 눈에 보이는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도 아니며 비주류 학문에 매진한 학자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형두 선생의 스승인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의 일대기가 내년에 일본 공중파 드라마로 방영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식물학자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니 반가웠지만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서글펐다. 영상화되는 것도 대중이 어느 정도 궁금해하고 흥미가 있을 만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은 식물학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식물학계 위인이 우장춘 박사인 이유도 그를 수식하는 ‘씨 없는 수박’이 그나마 우리 삶과 관련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기억하는 것이다. 사실상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토대 이론인 ‘종의 합성’을 증명한 것이지만,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서야 비로소 우리가 알 만한 위인이 되었다.
그러나 노란 애기똥풀과 달맞이꽃 그리고 꿩의다리와 매발톱을 만나고 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한 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식물들이 고운 우리말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역사 뒤에는 장형두라는 식물학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식물 세밀화가>
언젠가 야생화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분들로부터 장형두 선생의 묘지가 옛 망우공동묘지인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안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 망우동이라면 내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데 지난주가 되어서야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다녀왔다. 공원에 다다랐을 때 이곳에 잠들어 있는 영면 인사의 소개 안내문을 발견했다. 그러나 안내문에 장형두 선생의 이름은 없었다. 이쯤 되니 선생의 묘지가 이곳에 있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직원분께 물었다.
“혹시 식물학자 장형두 선생님이 여기 계신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장영… 이요?”
“아니요. 장·형·두요.”
직원분은 모르는 이름이라며 안장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 주었고, 덕분에 선생의 묘지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선생의 묘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원 안내문에 소개된 수십 명의 영면 인사 중에는 조선총독부 초대 산림과장 출신으로 우리나라 조림에 힘썼던 일본인 사이토 오토사쿠와 산림과 직원이었던 아사카와 다쿠미가 소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두 분 모두 우리나라에 푸르른 숲을 남겨 준 것은 사실이지만 장형두 선생이 식물학계에 남긴 업적이 두 분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장형두 선생은 관료도 아니었고, 눈에 보이는 영향력을 가진 유명인도 아니며 비주류 학문에 매진한 학자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형두 선생의 스승인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의 일대기가 내년에 일본 공중파 드라마로 방영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식물학자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니 반가웠지만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서글펐다. 영상화되는 것도 대중이 어느 정도 궁금해하고 흥미가 있을 만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은 식물학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식물학계 위인이 우장춘 박사인 이유도 그를 수식하는 ‘씨 없는 수박’이 그나마 우리 삶과 관련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기억하는 것이다. 사실상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토대 이론인 ‘종의 합성’을 증명한 것이지만,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서야 비로소 우리가 알 만한 위인이 되었다.
그러나 노란 애기똥풀과 달맞이꽃 그리고 꿩의다리와 매발톱을 만나고 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에 한 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식물들이 고운 우리말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역사 뒤에는 장형두라는 식물학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