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여름 음식이 유별난 한국
2022년 06월 29일(수) 23:00
아마도 한국인처럼 계절 음식에 민감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살아 보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여름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물론 견문과 식견이 짧아서 놓친 경우도 있겠지만, 확신해도 좋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몇 해의 여름을 넘겼는데, 아이스크림(젤라토)과 그라니타(빙수) 같은 단 음식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콩 요리나 제철 토마토 샐러드 정도를 들 수 있을 정도다. 여름이 되기 전에 그 나라의 미디어에서도 ‘여름 음식 특집’이러고 해서 기사가 나오는데, 가지나 호박 같은 여름 재료를 쓴 샐러드나 요리 정도가 보통이었다. 음식이 차가운 게 아니라 여름 재료를 쓴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한국처럼 이를 시리게 하는 냉면이거나(물론 냉면은 겨울 음식에서 시작했지만), 오이냉국이거나 하는 성격이 확실한 여름 음식은 보지 못했다.

중국인이 여름에도 찬 음식, 찬 음료를 안 먹는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찬 음식과 음료가 팔리지만 가짓수가 아주 적고 역사도 짧다. 아이스커피가 팔리는 게 고작이며, 홍콩 등의 남방 지역을 중심으로 냉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지만 차는 일단 더운 것이 기본이다. ‘얼죽아’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중국에 여름 음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냉채(양채·凉菜)가 그것이다. 우리가 중식당에 가면 이품 냉채니 삼품 냉채니 하는 요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여름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양채’ 즉 서늘한 음식이지 이가 시리지는 않다. 수도 베이징의 대표적인 여름 음식 중의 하나가 짜장면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짜장면은 ‘찬 음식’군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뜨겁지 않은 음식’이며, 이는 곧 여름에 먹기 적합한 음식으로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베이징 짜장면은 뜨겁지 않고 ‘미지근’하다. 국수를 삶아 찬물에 헹군 후 미지근한 볶은 짜장과 여름 날 채소를 얹어 먹기 때문이다. 한국은 면을 삶아 찬물에 헹군 후 더운 물에 토렴하여 뜨거운 짜장을 부어 내므로, 배달이 아닌 홀에서 주문해서 먹으면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뜨거울 때도 있다. 한국인에겐 짜장면은 절대로 여름 음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짜장면이니 짬뽕이니 하는 음식이 여름이 되면 안 팔려서, 중식당 화교들이 개발한 것이 중국식 냉면일 정도다. 요즘도 다수의 중식당에서는 냉면은 물론이고 한국인의 기호를 겨냥한 냉콩국수를 파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짜장면이 여름 음식으로 수용되지 않은 결과다.

한국의 초기 화교 중식당은 ‘량빤ㅁㅖㄴ’이나 ‘깐빤ㅁㅖㄴ’이라는 비빔면을 팔았다. 이것 역시 여름 음식이다. 그러나 얼음처럼 차가운 음식이 아니어서 외면받고 도태되었다. 그 자리에 중국식 얼음 슬러시 냉면이 개발되어 들어선 것은 아시는 바와 같다.

올 여름 스페인은 살인적인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5월에 50도에 육박하는 지역도 나왔다. 스페인이 대체로 폭염이 심하지만 올해는 더하다. 기후 이변은 온난화와 관련해서 가장 큰 이슈이고,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여름이 혹독해지면서 더욱 위기의식을 불러오고 있다. 하여튼 스페인은 워낙 더워서 차가운 음식이 ‘제법’ 있는 편이다. 한국에도 알려진 토마토 가스파초뿐 아니라 여러 채소로 차가운 스프를 만들어 먹는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드문 경우다. 그렇지만 차가운 스프라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미지근함을 겨우(?) 넘어선 정도랄까, 차갑다고 인지할 정도에 그친다. 한국처럼 화끈한(이 말은 어폐가 있지만) 여름 음식은 없는 것이다.

일본도 무덥기로 소문난 날씨다. 체감적으로 한국의 무더위에 비해 두 배쯤 힘들다. 습도와 온도가 훨씬 높다. 그렇지만 여름 음식이 한국처럼 대단한 게 없다. 그들은 여름에 시원한 메밀국수를 좋아하는데, 한국 스타일을 기대하면 곤란해진다. 얼음처럼 차가운 국물도 없고(그저 미지근하다), 그 짠 육수에 찬물에 헹군 메밀국수를 찍어 먹는 정도다. 그걸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한다. 한국의 잔치국수 면과 유사한 소면(素麵)도 여름 음식으로 즐기는데 식당에서 파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가정에서 해 먹는다. 이때도 얼음 냉국 같은 데에 국수를 넣어 먹는 건 아니다. 메밀국수처럼 적당히 차가운 장국에 찍어 먹는 게 고작이다. 강점기에 전해진 메밀국수를 한국도 좋아한다. 대부분은 얼음 육수에 메밀면을 곁들여 낸다. 한국화시킨 것이다. 일본의 시내 식당에서 차가운 중국식 냉면이 있다고 하여 시켜봤지만, ‘꽤 차가운 편’이었지 결코 이가 덜덜 시리게 만드는 그런 냉면은 아니었다. 한국은 일본에서 기원한 인스턴트 라면도 냉면화시켜서 먹는 나라다. 여름에 라면을 찬 스프 국물을 만들어 말아 먹는 풍습이 혹독하게 더운 조선소나 철강공장 같은 데서 생겨났다. 물론 여름용 차가운 인스턴트 비빔면은 한국에서 아주 인기가 있다. 물론 일본에 없는 문화다.

시원한 여름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서 이 무서운 여름을 나야 하겠다. 그나저나 갈수록 더워지는 지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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