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고향을 감각하다-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2022년 06월 16일(목) 01:00
사람들은 고향을 언제 떠날까. 태어난 곳에서 생애 대부분을 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처럼 수도권에 모든 게 집중된 환경에서 누군가는 필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먼저 공부 잘하는 아이가 그렇다. 동네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책상 위에서 열심히 노력한 학생은 그 지역의 대학이 아닌 서울의 명문대를 갈 것이다. 명문대를 졸업해 서울에 있는 번듯한 직장을 다닐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는 취업 준비생이 그렇다. 그가 원하는 일은 높은 확률로 지방보다는 서울에 더 많을 것이다. 방송계에 일하고 싶은가? 패션계에 일하고 싶은가?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가? 대부분의 직군은 서울에 가까울수록 그 선택지가 커진다. 마지막으로는 고향이 싫어서 떠날 수도 있다. 그 싫음의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앞서 말한 두 가지 떠남의 형태와도 관련이 깊을 것이다.

김지연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는 고향을 떠난 이들과 고향에 머무는 이들이 나온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살고, 수년 뒤에는 소멸한 지역이 한두 군데가 아닌 현실에서 ‘마음의 없는 소리’는 나름의 방법으로 특장점을 갖는 셈이다. 표제작 ‘마음에 없는 소리’의 주인공 ‘나’는 할머니의 작은 식당을 이어받아 국숫집을 개업한다. 요리에 관심도 소질도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다. 젊은 세대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자치단체에는 청년 지원 사업이 있지만 ‘나’는 애매하게 나이 제한에 걸린다. 장사는 되지 않고, 고향에 남은 친구들과의 삶도 어느덧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들에게 고향은 주거지이자 일터이지만, 재생이 필요한 ‘지역’이자 타지인의 뷰파인더에 잡히는 피사체다. 점점 비어 가는, 대상화되는 고향은 그들의 삶에 어떤 상실감을 주는 것 같다. 그들은 수도권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그 이상의 공력이 필요하다. 소설의 문장처럼, 원하든 원치 않은 삶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고 거기엔 아주 많은 공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굴 드라이브’에는 잠시 고향에 돌아온 화자가 등장한다. 주인공 ‘나’는 마땅한 직업이 없다. 그런 그에게 삼촌이 전화를 걸어와 좋은 일자리의 면접을 권한다. 알고 보니 그것은 맞선 자리였고, ‘나’는 그 맞선에 나설 생각이 없다. 대신 고향에 내려온 김에 삼촌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한다. 공장에서 다듬은 굴을 배달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인 작업반장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초대까지 받게 된다. 친구의 집에서 나는 학교 다닐 때 괴롭혔던 일에 대한 사과를 받는다. 모든 게 갑작스러웠지만, ‘나’는 사과를 받아 주길 거부한다. 반장을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이 생기자, 그때야 고향을 좀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고향에서 생긴 일 모두가 노스탤지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고향은 어떤 면에서 지긋지긋한 데가 있다. 일단 고향을 떠난 이가 다시 고향에 금의환향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추억의 노스탤지어도 아니고, 현실의 유토피아도 아닌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느낀 안도감은 무엇일까.

고향을 떠나 서울과 경기도 곳곳에 머문 지 이제 십수 년이 되어간다. 가끔 고향 생각을 한다.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의 소식을 들을 때, 올해처럼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 명절이 다가올 때, 그래서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하염없이 핸들을 잡고 있을 때, 고향을 떠나와 살고 있다는 감각이 아리게 엄습한다. 돌아가고 싶은 걸까? 그건 책의 제목처럼 ‘마음에 없는 소리’일 것이다. 아직 고향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곳은 무엇인가. 거기에 머무는 나의 친구들은, 사람들은, 존재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상기될수록 고향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삶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니, 그 기간 내내 우리는 그곳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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