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진짜 게임에 들어선 여성들 -박서련 소설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2022년 04월 21일(목) 03:00
게임을 잘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게임에 소질이 없다. 어릴 적 오락실이 유행하고 가정용 게임기가 보급되면서 게임은 또래가 어울리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되었는데, 그걸 잘하지 못하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저 그런 학교 성적에 축구 같은 운동에도 젬병인 친구여도 스트리트파이터를 잘하면 크게 대우받았다. 게임기가 있는 친구 집에 삼삼오오 모여 조이스틱을 쥐고 있으면, 슈퍼 마리오를 잘하는 친구가 그중 슈퍼 영웅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스타크래프트가 공전의 히트였다. 현란하게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며 적군을 무찌르는 친구는 스타가 되었다.

근래에는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나 게임을 즐기고 PC방에서는 여러 고사양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집에서 즐기는 콘솔 게임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우리나라 문화 사업에서 수출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게임 업체다. 21세기 들어 창업하여 부를 이룬 사업자는 거의 게임 업계의 큰손들이다. 스타 프로게이머는 어지간한 스포츠 스타의 연봉과 비교할 수 없는 돈을 번다. 게임 중독과 모바일 게임의 과금 체계 등은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역시 지금은 아무려나 게임의 시대가 맞는 듯하다. 나처럼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게임 문화와 게임 사업이 지금의 발전상을 이루기까지 게임의 주인공은 주로 남자였다. 오락실은 소년들의 무대였으며 PC방은 남자들끼리 가는 놀이터로 꼽힌다. 거기에 여성이 자리는 없거나 아주 작다. 많은 게임의 지나친 남성향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와 일부 게임 유저의 여성혐오적 발화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박서련 소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서 그 엄마의 아들인 지승이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으로, 저학년 시절 따돌림 폭력을 당한 적 있다. 겨우 그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생각할 무렵, 형편없는 게임 실력이 다시 친구들의 놀림거리로 부상한다.

엄마는 그저 두고 볼 수 없어 게임 과외를 시키고자 한다. 처음 온 과외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애들은 서열이 중요한 거 아시죠? 요새 애들은 치고받고 하지 않아요. 게임 실력이 서열을 결정하죠.” 지승은 어쩌면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가 아닌, 친구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게임을 잘하려는 게 아닐까. 지승 엄마의 생각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녀는 지승의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게임 실력에도 그럴 참이다. 그리하여 과외를 진행하던 중 뜻밖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녀의 게임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 보통은커녕 다른 남자애들의 판을 찢어버릴 정도로 그녀는 게임에 뛰어났다.

그녀는 아들 대신 게임에 뛰어든다. 아들은 채팅에서 지금까지도 멸칭으로 불렸다. 게임을 잘못하는 유저에게는 어째서인지 ‘여자 이름’을 붙여 조롱했다. ‘엄마’라는 단어는 또 어째서인지 금칙어였다. 아들 또래 아이들은 어째서인지 ‘너희 엄마’라는 뜻의 신조어를 욕설 대신 썼다. 그녀는 모든 게임을 멋지게 이기지만, 어째서인지 거대한 게임의 패자인 것만 같다. 아들이 오랜 시간 머무는 온라인 세계는 오프라인 세계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여성 혐오로 점철되었다. 그녀는 모성과 돌봄의 이름으로 아들이 그 세계에서나마 잘나가길 기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목도한 건 금칙어가 된 ‘엄마’라는 단어와 그 단어를 욕설로 인식하여 클린 지수가 떨어지는 아들의 계정, 아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아들 친구들의 채팅뿐이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는 이처럼 여성 혐오와 가부장제에 맞닥뜨리는 여성 인물이 등장한다. 최선을 다해 그 장벽을 돌아갈 방법을 찾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은 그 벽을 부숴 버리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이 사실은 게임에 놀라운 소질이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남편은 게임 회사에 다니고 아들은 PC방에 다니지만 자신은 집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느라 쪼그라들어 알 수 없었던 재능이다. 박서련의 소설은 그 재능을, 진짜 자기 모습을, 결연하고 열심히 찾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이 땅의 거의 모든 여성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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