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제주 로컬 음식의 발견
2022년 04월 07일(목) 04:00 가가
이탈리아의 식당에서 일할 때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손님의 기호였다. 손님들은 대개 이탈리아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카르보나라와 바질 페스토, 토마토해산물 스파게티다. 봉골레 스파게티와 크림소스도 아주 좋아한다. 식당 측에선 상당히 난감하다. 저런 메뉴들은 특정 지역의 음식이거나, 또는 아예 이탈리아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카르보나라는 어지간한 전국적 대중음식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식당에서 막 파는 음식은 아니다. 수도 로마와 인근 지역의 토속 음식이어서, 뻔한 관공지가 아니라면 다른 지역 식당에선 거의 팔지 않는다. 바질 페스토도 그렇다. 제노바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음식일 뿐, 전국적 음식은 아닌 까닭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단체 관광객들은 현지 가이드들이 그런 기호를 반영해서 짠 메뉴를 접하게 될 뿐, 진짜 지역의 토속적인 음식을 먹기란 어렵다.
해산물 스파게티에는 토마토소스를 끼얹는 경우는 드물고, 크림소스는 이탈리아 전체에서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봉골레도 조개가 신선하게 나오는 철의 대중식당에서 취급하기는 하는데, 한국처럼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면 사철 내내 파는 것과는 문화가 다르다.
이렇듯 음식은 한 지역을 대표하면서도 동시에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대표적인 지역이 제주도다. 현재 이 지역에서 파는 다수의 음식은 원래 제주도민의 일상 음식이 아닌 메뉴가 많다. 80년대에 제주에 비행기 여행이 활성화되고, 신혼여행과 단체관광이 늘면서 ‘육지 사람들’의 입맛에 맞거나 그들이 제주도의 음식이라고 믿는 메뉴가 점차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매콤한 생선조림이나 빨간색의 물회 같은 것들이다. 현지인들이 빨간 물회 대신 된장을 넣은 물회를 즐긴다는 것을 십수 년 전에 접하고는 상당히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이제 이런 음식은 제주도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렵다. 제주 도민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그들조차 입맛이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호박을 넣은 갈칫국이나 한치물회 같은, 우리가 제주도민들이 일상적으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음식이 실제로는 계절 별미거나 지역(바닷가)민들의 노동 음식에 국한된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다. 이런 음식을 사철 파는 것으로 성공한 한 향토 식당은, 실은 70년대 들어서야 식당의 고정 메뉴로 저런 ‘제주도스러운’ 음식이 등장했다고 확인해주기도 했다. 요즘 그 식당에는 관광버스가 여러 대 몰려들어 음식을 즐기는데, 이미 그것조차 박제화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 제주 여행의 코드, 그러니까 검색어의 열쇠는 ‘현지인 맛집’이다. 현지인이라는 것이 모호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일상적으로 도민의 삶에 근접한 음식을 즐기려는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고나 할까. 인터넷의 영향으로, 도저히 찾아올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외진 곳의 식당도 홍보만 잘되면 손님이 몰려든다. 더 ‘로컬’이거나 더 세련된 방식의 음식을 찾는 관광객들의 기호가 만들어낸 유행이다.
그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민 권역’(이미 모바일과 검색의 일상화로 관광객이 몰려들어 의미가 없어진 말이긴 하다)의 식당이 여전히 있다. 최근의 취재에서는 멸치와 전갱이 같은 제주도의 서민 재료로 만드는 식당을 한 군데 찾았다. 멸치는 봄이 산란철이라 뭍으로 붙기 때문에 이 시기가 어로가 많아진다. 여수·남해·기장 같은 지역에서도 이즈음 멸치 축제가 열리는 까닭이다. 제주도도 멸치조림을 많이 먹어 왔는데, 전통적으로는 말린 것으로 ‘멜지짐’을 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기호에 맞춰 고춧가루를 넉넉히 풀고 사철 멸치를 준비해서 파는 식당이 있다. 현지인들 사이에 유명했다가 관광객에게까지 알려진 앞뱅디식당 같은 곳이 그렇다. 이 집에서는 배추 등속을 넣고 끓이는 맑은 전갱이국(각재기국)도 유명하다. 로컬의 힘이 있는 식당이다.
제주도도 여느 뭍의 동네처럼 해장국과 국밥이 유명하다. 제주 하면 돼지고기인데 돼지고깃국을 이용해서 먹는 대표적인 국밥이 바로 몸국이다. 원래는 잔치 음식으로 시작해서 상시 메뉴로 파는 집이 늘었다. 돼지를 잡아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제주 북쪽의 대표적인 로컬 마을인 하귀리의 이가도담해장국에서 몸국으로 몸을 천천히 풀었다. 몸은 모자반을 뜻한다. 추자도의 연한 모자반을 넣어 부드럽게 몸으로 스미는 국을 판다. 관광객 중심으로 움직이는 제주의 음식문화에도 여전히 지역의 맛은 살아 있달까. <음식칼럼니스트>
그래서 요즘 제주 여행의 코드, 그러니까 검색어의 열쇠는 ‘현지인 맛집’이다. 현지인이라는 것이 모호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일상적으로 도민의 삶에 근접한 음식을 즐기려는 새로운 유행이 생겼다고나 할까. 인터넷의 영향으로, 도저히 찾아올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외진 곳의 식당도 홍보만 잘되면 손님이 몰려든다. 더 ‘로컬’이거나 더 세련된 방식의 음식을 찾는 관광객들의 기호가 만들어낸 유행이다.
그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민 권역’(이미 모바일과 검색의 일상화로 관광객이 몰려들어 의미가 없어진 말이긴 하다)의 식당이 여전히 있다. 최근의 취재에서는 멸치와 전갱이 같은 제주도의 서민 재료로 만드는 식당을 한 군데 찾았다. 멸치는 봄이 산란철이라 뭍으로 붙기 때문에 이 시기가 어로가 많아진다. 여수·남해·기장 같은 지역에서도 이즈음 멸치 축제가 열리는 까닭이다. 제주도도 멸치조림을 많이 먹어 왔는데, 전통적으로는 말린 것으로 ‘멜지짐’을 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기호에 맞춰 고춧가루를 넉넉히 풀고 사철 멸치를 준비해서 파는 식당이 있다. 현지인들 사이에 유명했다가 관광객에게까지 알려진 앞뱅디식당 같은 곳이 그렇다. 이 집에서는 배추 등속을 넣고 끓이는 맑은 전갱이국(각재기국)도 유명하다. 로컬의 힘이 있는 식당이다.
제주도도 여느 뭍의 동네처럼 해장국과 국밥이 유명하다. 제주 하면 돼지고기인데 돼지고깃국을 이용해서 먹는 대표적인 국밥이 바로 몸국이다. 원래는 잔치 음식으로 시작해서 상시 메뉴로 파는 집이 늘었다. 돼지를 잡아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상업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제주 북쪽의 대표적인 로컬 마을인 하귀리의 이가도담해장국에서 몸국으로 몸을 천천히 풀었다. 몸은 모자반을 뜻한다. 추자도의 연한 모자반을 넣어 부드럽게 몸으로 스미는 국을 판다. 관광객 중심으로 움직이는 제주의 음식문화에도 여전히 지역의 맛은 살아 있달까.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