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 지역 우리 식물] 식물을 안다는 것은 - 목포의 왕자귀나무
2022년 02월 17일(목) 05:00 가가
식물 조사 때마다 나는 늘 루페(확대경)를 챙긴다. 루페를 끈으로 연결해 목에 걸고 다니다가 식물을 만나면 햇빛에 비춰 관찰한다. 렌즈 속 식물은 실제보다 20배 확대된다. 할미꽃 줄기는 긴 수염과 같은 털이 열정적으로 난 모습으로 보인다. 붉게만 보이는 산사나무 열매 표면도 검은색·붉은색·노란색·갈색의 다채로운 색으로 보인다. 루페와 현미경을 통해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내가 평소 눈으로 보는 식물의 모습은 밤하늘의 별처럼 작디작고 희미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식물을 그리게 된 이후로 무언가를 안다는 말을 자신 있게 꺼내기 어려워졌다.
앎이란 무엇일까? 어느 노래를 안다는 것은 가사와 음을 알고 따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일 테고,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의 프로필을 알거나 대화를 충분히 해 보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식물만큼은 그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더 많은 정보를 알 필요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잠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꽃병에 꽂힌 식물이 장미이고, 들판에 핀 꽃이 튤립이란 사실을 아는 순간, 더 이상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멈춘다. 이들의 고향이 어디인지 누가 육성했는지에 관한 것들은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에게도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원산지가 있으며 지금 살고 있는 자생지와 분포 정보도 있다. 원산지 정보는 식물을 재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식물 재배를 어려워하는 것은 그 대상을 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식물에는 우리 몸을 지탱하는 다리처럼 뿌리와 줄기가 있고 또한 잎·꽃·열매·씨앗이 있다. 적어도 이 기관들을 모두 보고서야 식물을 봤다고 혹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월에 피어 나는 미선나무의 꽃과 한여름의 열매 그리고 가을의 다 익은 깍정이와 한겨울에 붉게 드러나는 겨울눈을 다 보려면, 최소한 일 년 동안 식물 곁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니 한 해 동안 단 한 종의 식물만 제대로 알게 되어도 그 해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계속 식물 공부만 하느냐며 의아해하지만, 사실 식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내 평생의 시간을 다 투자해도 한참 부족하다. 지구상에는 40만여 종, 우리나라에만 4500여 종이 살고 있다. 내 평생 식물에만 몰두해도 이 식물을 모두 알 방도는 없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평생 한두 종의 식물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식물 세밀화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식물세밀화가 르 두테는 평생 장미와 나리 두 식물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다.
언젠가 자귀나무속 식물을 그려야 해서 관련 논문을 찾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귀나무와 왕자귀나무가 자생한다. 그런데 왕자귀나무 관련 논문과 단행본을 보니 모두 우리나라 연구자 한 분의 연구 결과였다. 결국 나는 그의 논문과 책에 적힌 정보를 바탕으로 목포에서 왕자귀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왕자귀나무는 목포와 신안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지역에 주로 자생한다. 멀리까지 가서 실제로 본 왕자귀나무의 흰 꽃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평생을 왕자귀나무 연구에 몰두하신 황호림 선생은 저서 ‘왕자귀나무’에서 “필자가 왕자귀나무의 존재를 알고 난 뒤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고 했다. 원하면 언제라도 왕자귀나무를 볼 수 있고, 누구보다 이 나무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목포 현지인으로서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 역시 식물을 그리는 일을 시작한 것은 식물이 좋아서였지만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원천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공간의 식물을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었다. 제주의 식물은 제주에 사는 이가, 우리 집 뒷산의 식물은 이 산에서 가까이 사는 이가 가장 오랫동안 관찰하고 잘 기록할 수 있다. 결국 식물을 안다는 것은 그 곁에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의 결실이 아닐까 싶다.
<식물 세밀화가>
언젠가 자귀나무속 식물을 그려야 해서 관련 논문을 찾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귀나무와 왕자귀나무가 자생한다. 그런데 왕자귀나무 관련 논문과 단행본을 보니 모두 우리나라 연구자 한 분의 연구 결과였다. 결국 나는 그의 논문과 책에 적힌 정보를 바탕으로 목포에서 왕자귀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왕자귀나무는 목포와 신안을 중심으로 전라남도 지역에 주로 자생한다. 멀리까지 가서 실제로 본 왕자귀나무의 흰 꽃은 더욱 환상적이었다. 평생을 왕자귀나무 연구에 몰두하신 황호림 선생은 저서 ‘왕자귀나무’에서 “필자가 왕자귀나무의 존재를 알고 난 뒤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고 했다. 원하면 언제라도 왕자귀나무를 볼 수 있고, 누구보다 이 나무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목포 현지인으로서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 역시 식물을 그리는 일을 시작한 것은 식물이 좋아서였지만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던 원천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공간의 식물을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었다. 제주의 식물은 제주에 사는 이가, 우리 집 뒷산의 식물은 이 산에서 가까이 사는 이가 가장 오랫동안 관찰하고 잘 기록할 수 있다. 결국 식물을 안다는 것은 그 곁에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의 결실이 아닐까 싶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