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우리에게 가능한 미래를 위해
2022년 01월 27일(목) 04:00
조해진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여러모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숱하게 벌어지는 2022년의 선거판이지만 그중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은 기후위기에 대한 무관심이다. 후보도 유권자도 미디어도 우리에게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논하지 않는다. 대통령 하나로 바뀔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눈앞에 더 훤하고 빤하게 보이는 또 다른 고통과 불안이 더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탄소 중립이니 기후협약이니 재생에너지니 하는 것보다 취업과 부동산과 주식 시장 같은 당장의 것들에 예민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특히나 기성세대라면, 시차를 두고 서서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일어날 재앙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미래 세대에게 더 존재론적인 위기다. 심지어 그들은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도 아니다. 태어나서 기껏 20여 년을 살았는데, 지구는 이미 병들었다. 인류는 짧은 시간에 치솟은 지구의 평균온도를 다시 내리기는커녕 올라가는 속도를 제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에서의 원전 사고는 물론 저 멀리 아마존에서의 자연 파괴도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앞으로의 지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야 할 땅이, 바다가, 그 모든 게 근미래에 망가져 버린다면 그 비현실 같은 현실을 살아야 할 젊은 세대에게 부동산과 암호화폐와 아파트와 일자리가 무슨 대수일까? 그들은 그것들을 누려 보지도 못한 채, 그것들이 허공에 사라지는 꼴을 봐야만 하는 곤경에 처했다.

조해진 소설집의 제목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과연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가 있을까? 작가는 미래라는 단어 앞에 ‘가능한’이 아닌 ‘허락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책의 도입부에 짝꿍처럼 놓인 단편 ‘X-이경’과 ‘X-현석’은 그 허락됨/허락되지 않음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그린다.

태양계 밖 거대 행성이 수천만 년 만에 태양계로 접근하면서 위기는 발현된다. 궤도가 헝클어진 소행성 중 하나가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확률은 4분의 1.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현재의 삶을 놓아 버리거나,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거나. 두 유형은 하나의 인간에게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경과 현석은 소행성의 충돌 예상 시간을 얼마 앞두고 아침을 차려 먹기로 한다. 미래가 허락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으로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소행성의 충돌은 그다지 절망적 미래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불확실하기에 인간은 어찌할 도리 없이 그것을 맞이한다. 운명이라는 단어에서 ‘명’만 삭제한 채, 운에 기댄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다르다. 책의 마지막 수록작 클로즈드(‘closed’)의 명멸은 과학기술로 유예된다. 소설에서 인류는 빙하와 동토의 해빙으로 돌이킬 수 없는 끝에 다다른다. 잇따른 지진으로 원자력사고가 일어나 방사능 수치는 치솟고, 식량과 자원은 고갈되고, 국가도 사라진다. 남은 건 과학자들의 설계로 만들어진 폐쇄형 돔과, 그 안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이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돔의 과학자들은 생체기술을 통해 죽지 않는 삶으로 진입한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돔은 그러니까, 마지막 인류 몇 명 정도가 영원히 살아가는 지상낙원 혹은 고립된 지옥도가 된 셈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인류가 우선 해결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소설은 물론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소설은 짧은 이야기 몇 편으로 우리에게 경고하듯 묻는다.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가 있느냐고. 당연히 우리는 우리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미래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선거마다 투표하고 누군가를 지지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책을 그 결정의 기준으로 삼으면 어떨까. 그걸 제시하는 후보가 없어 보인다는 게 진정 문제이긴 하지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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