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 지역, 우리 식물] 순천, 히어리의 시작
2022년 01월 19일(수) 22:30 가가
이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울 식물을 상상해 본다. 복수초, 생강나무, 산수유, 매실나무… 모두 매해 겨울 추위가 다 가지 않은 초봄에 잎보다 꽃을 먼저 틔우는 식물이다. 이 개화 목록 중에는 히어리도 있다. 황갈색의 가느다란 가지마다 노란 종 모양 꽃이 피어나는 식물. 나는 근처 광릉숲의 히어리 꽃을 보면서 ‘비로소 봄이 왔구나’ 실감한다. 물론 이곳의 히어리는 스스로 번식해 자라난 것이 아니라, 원종을 증식해 심은 개체다.
인간이 심은 것이 아닌 스스로 번식해 자라난 ‘자생식물’로서의 히어리를 본 경험이 내게는 두 번 있다. 한 번은 학부 시절 견학으로 광양에 가서였고, 또 한 번은 수목원에 다니던 시절 순천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둘 다 전라남도에서 발견한 것이고, 또 둘 다 히어리를 보리라 생각지도 못한 순간의 발견이었다. 식물은 늘 고대할 때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뜬금없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
내가 히어리를 만난 순천의 조계산은 이 식물에게도 특별히 의미 있는 장소다. 조계산의 개체가 인간에 의해 발견되어 히어리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학명에는 우리나라 원산임을 증명하는 종소명(coreana. 코레아나)이 적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많은 자생식물이 그렇듯 이들을 발견해 명명한 사람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다. 종소명 코레아나 다음 음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에키(Uyeki)라는 일본인 명명자 이름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물학자들이 우리나라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우리나라 지역 곳곳을 조사해 발견한 식물에 이름을 붙이고 기록을 남겼다. 당시 우리나라에 온 대표적인 식물학자로는 나카이 다케노신과 우에키 호미키가 있다. 우에키 호미키 선생은 우리나라에 애착을 꽤 많이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해방까지 인생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보냈으며, 박사 논문 주제 또한 우리나라의 주요 수종인 소나무 연구였다. 1924년 그는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송광사 근처에서 발견한 신종 식물에 송광납판화란 이름을 붙여 발표했다. 이 이름은 송광사 부근에서 발견한 식물로 꽃잎이 밀랍을 바른 것과 같다는 의미다. 그렇게 식물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지 20여 년이 지난 후 우리나라 1세대 식물학자인 이창복 선생은 송광납판화를 히어리라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히어리라는 이름으로 부른 연유에는 여러 속설이 있다. 자생지 근처의 마을 사람들이 이 식물을 히어리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고도 하고, 꽃잎이 얇아 희어 보여서 히어리라 붙였다고도 한다. 어쨌든 나는 히어리라는 이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든다. 기억하기도 쉽고 식물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나는 멸종 위기 식물을 주제로 하는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당시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2급이었던 히어리를 관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작업 중이던 2012년 히어리가 멸종 위기 목록에서 해제되어 이 식물로는 전시에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그동안의 스케치가 소용없게 됐다.
식물은 살아 있는 생물이기에 언제든 프로필이 변경될 소지가 있다. 기후 변화로 급변하는 자연 현상에 의해 바늘잎나무 군락이 모조리 죽어 버리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멸종 위기 식물을 복원 증식하는 데에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식물 세밀화가가 평생 식물 공부를 하고, 최신 연구 경향에 밝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그러나 송광납판화가 히어리로 불리고, 멸종 위기종이 자생지 개체수가 많은 식물이 되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식물이 처음 발견된 순간에 관한 정보다. 히어리가 일본 식물학자 우에키로부터 한국에서 발견되고 명명된 식물임은 학명(Corylopsis coreana Uyeki)으로서 영원히 남는다.
히어리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 대량 증식에 성공하여 전국 곳곳에서 조경수로 심어지고 있다. 자생식물이다 보니 워낙 우리나라 환경에서 잘 생장하는 데다 도시 오염에도 강하기 때문에 이제는 히어리를 수목원과 공원, 도시 화단에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이 순천 조계산에서 처음 발견된 히어리라는 식물이 지나온 백여 년간의 역사다. <식물 세밀화가>
히어리라는 이름으로 부른 연유에는 여러 속설이 있다. 자생지 근처의 마을 사람들이 이 식물을 히어리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고도 하고, 꽃잎이 얇아 희어 보여서 히어리라 붙였다고도 한다. 어쨌든 나는 히어리라는 이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든다. 기억하기도 쉽고 식물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나는 멸종 위기 식물을 주제로 하는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당시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2급이었던 히어리를 관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작업 중이던 2012년 히어리가 멸종 위기 목록에서 해제되어 이 식물로는 전시에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그동안의 스케치가 소용없게 됐다.
식물은 살아 있는 생물이기에 언제든 프로필이 변경될 소지가 있다. 기후 변화로 급변하는 자연 현상에 의해 바늘잎나무 군락이 모조리 죽어 버리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멸종 위기 식물을 복원 증식하는 데에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식물 세밀화가가 평생 식물 공부를 하고, 최신 연구 경향에 밝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그러나 송광납판화가 히어리로 불리고, 멸종 위기종이 자생지 개체수가 많은 식물이 되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식물이 처음 발견된 순간에 관한 정보다. 히어리가 일본 식물학자 우에키로부터 한국에서 발견되고 명명된 식물임은 학명(Corylopsis coreana Uyeki)으로서 영원히 남는다.
히어리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 대량 증식에 성공하여 전국 곳곳에서 조경수로 심어지고 있다. 자생식물이다 보니 워낙 우리나라 환경에서 잘 생장하는 데다 도시 오염에도 강하기 때문에 이제는 히어리를 수목원과 공원, 도시 화단에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이 순천 조계산에서 처음 발견된 히어리라는 식물이 지나온 백여 년간의 역사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