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전복 이야기
2022년 01월 13일(목) 02:00
전복이 흔해졌다. 아니, 흔해진 지 오래다. 예전에 태풍이 와서 양식 주산지인 완도 일대가 뒤집어지는 가슴 아픈 피해를 본 때에도 전복 값이 그리 엄청 비싸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나라가 전복 양식 연구에 들어간 건 1972년도라고 한다. 오래전 일이다. 이런저런 고초와 실패가 많았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값이 많이 싸지더니, 2천 년대 들어서 크게 낮아졌다. 가격 하락에는 어느 정도 한계는 있다. 전복은 자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륙에서 기르는 전복 양식어장을 가본 적이 있다. 깨끗하게 청소 잘해야 하고, 조용히 해 줘야 한다. 전복은 소리에도 민감하다. ‘시끄러우면 새끼도 안 만든다’며 양식장 주인은 혀를 찼다.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살이 안 찐단다. 가만히 수조를 보는데 날래기가 등 푸른 생선 같다. 가만히 누워 있을 것 같은데, 뜻밖이다. 사람 발소리를 알아듣고, 먹이 주러 오는 건지도 기막히게 알아챈다고 한다.

전복은 바다의 산삼이라거나 동물성 불로초라고도 한다. 장수나 건강에 전복이 빠지지 않는다. 제주목사가 부임하면 제일 큰 근심이 전복 진상이었다. 특히 가렴주구가 심해진 조선 후기에 가면 제주 사람들은 전복 때문에 유민이 되기도 했다. ‘할당량’을 정해 놓고 독촉을 해 대다가 가두어 매를 치는 일도 잦았다.

중앙정부에서 온 관리야 현지 사정을 알더라도 양을 못 맞춰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급이나 뭍으로 발령을 받고, 최소한 자리보전을 해야 하니까 그랬다. 그러니 전복 잡는 양민들-해녀뿐 아니라 남녀의 구별 없었다-이 치도곤을 당했다. ‘해남’(海男) 대신 해녀(海女)가 많아진 것도 전복 잡는 남자들이 가렴주구에 학을 떼어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복은 버릴 것이 없다. 살은 살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썼다. 전복이 귀할 때는 시중에 ‘진짜 전복죽 감별 방법’이 인구에 회자되곤 했다. 죽 색깔이 녹색이 아니면 가짜라는 거다. 소라살로 끓인 죽이라는 뜻이었다. 전복 내장이 푸르스름하여 같이 끓이면 녹색이 나오는 걸 염두에 둔 얘기였다.(정작 소라로도 푸르게 끓일 수 있다고 한다. 미역을 갈아 넣거나 소라 내장도 푸른빛을 띠기 때문이라나.)

껍질도 버릴 게 없었다. 한의학의 바이블인 ‘본초강목’에 ‘눈이 멀 병이 걸려도 전복껍질로 고칠 수 있다’고 나온다. 전복껍질의 별칭이 석결명인 것은 이런 까닭이다. 완도의 어느 전복회사에서 껍질과 결명자 등을 섞어 드링크를 제조 판매하고 있는 것도 이런 근거에서 나온 일이다. 전복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아주 인기 있다. 일본에 갔더니 요릿집에서 파는 전복에 ‘한국산’이라고 써 놓았다. 전복 양식 기술은 한국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홍콩은 말린 어물의 집산지다.(그들 말로는 건화(乾貨)라고도 부르는데 ‘말린 돈’이라는 뜻이다.) 생선의 부레, 샥스핀 같은 날개, 가리비, 해삼, 전복의 말린 것이 많이 유통된다. 말린 것은 과거에 냉장 기술이 없을 때 선택한 방법이었다. 한데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품질과 맛을 좋게 해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말린 해삼과 전복을 물에 불리면 특이한 맛과 감촉이 생긴다.

중국 얘기가 나왔으니 더 보태 보자. 삼국지의 조조도 즐겼고 진시황도 장복했다고 한다. 내륙이니 한겨울이 아니라면 아마도 말린 건화를 먹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중국요리 중에 제일 귀하고 비싼 건 불도장이다. 스님도 담을 넘을 만큼 맛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요리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팔면서 소문이 났다. 전복이 들어가야 하고, 기왕이면 말린 걸 불려서 써야 더 좋다고 한다.

전복이 흔해지면서 전복라면도 나왔다. 떡볶이에 전복을 넣는 것도 봤다. 대개 아주 작은 걸 쓴다. 시절이 이렇게 바뀌었다. 크게 키운 전복은 아직 비싸다. 전복 요리가 다채롭지 못한 것도 생산자들에게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전복이 더 싸져도 좋겠다. 단 더 많이 우리가 소비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생산자들도 손해가 없다. 오늘은 시장에서 장을 봐서 중간치로 여덟 마리를 4만 원에 샀다. 전복찜과 회를 먹었다. 이만 한 돈으로 이런 호사는 못 누리리. 이런 생각을 하면서.(옛날 임금님들도 수송 거리가 길어 활 전복은 못 먹었다지 않은가.)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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