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교’ 펴낸 정강철 작가 “‘동국진체’ 원교 이광사 예술혼 그리고 싶었다”
2021년 11월 14일(일) 19:10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2년여 취재 3년간 창작
원교 관련 소설로는 첫 작품

정강철 소설가 <정강철 제공>

동국진체(東國眞體)로 당대 서단을 풍미했던 원교 이광사(1705~1777)는 비극적 운명을 고독한 예술혼으로 개척했던 서예가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변방으로 밀려났지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열었던 반전의 인물이다.

해남 대흥사와 구례 천은사 대웅전에는 원교 글씨가 편액으로 걸려 있으며 강진 백련사에도 그의 신필(神筆)이 숨을 쉬고 있다. 고창 선운사와 부안 내소사에서도 그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원교 이광사의 삶과 예술세계를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광주일보 신춘문예(1989) 출신 정강철 소설가는 최근 ‘소설 원교’(문학들)를 발간했다.

평소 소리 소문 없이 작업을 하는 정 작가는 진중하면서도 반듯하다. 이런저런 행사에 얼굴을 내밀기보다 묵묵히 일을 하는 편이라, 한동안 소식이 없는 것이 ‘곧 창작집을 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그에게서 예상했던 대로 그동안의 침묵 이유를 알 수 있는 창작 관련 소식이 전해졌다. 묵직한 장편, 그것도 단 한번 소설로 다뤄지지 않았던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었다.

“서예라는 세계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전문성과 난해함 때문에 서예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서예를 소재로 삼은 소설쓰기가 만만치 않거든요. 추사 김정희에 대한 소설은 몇 편 보았지만, 추사보다 앞선 인물인 원교 이광사에 대한 소설은 제가 알기론 지금까지 한 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원교 이광사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 소설을 쓰겠다는 의욕이 발동했던 것 같아요.”

정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2년여 취재를 했고 3년 간의 창작에 매달렸다. 직접적으로 원교를 모티브로 장편을 구상했던 것은 작가 역시 서예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길지 않은 날들이었지만 고(故) 학정 이돈흥 서예가 문하에서 서예를 배우고 익힌” 경험이 직접적인 창작의 계기가 됐다.

그는 “추사보다 저평가돼 있는 원교를 소설로 써서 역사 위에 바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에 했었다”며 “막상 5년 전부터는 다른 소설은 쓰지 않고 원교만 붙잡고 살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막상 역사 속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참고문헌이 거의 없었다”는 말에서 저간의 어려움이 짐작됐다.

“‘강화학파의 서예가 이광사’(이진선, 한길사 2011) 한 권만이 이광사의 생애를 학술적으로 접근한 유일한 논문이었어요. 그 외 인물에 대한 평전이나 서책은 찾들 수 없었구요.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서 다루었던 원교 얘기는 단순한 일화를 바탕으로 한 가십거리 정도에 지나지 않아 인간 이광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자료로는 부족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같은 자료의 빈약과 조명되지 못한 ‘위인’의 삶은 소설가에게는 강렬한 창작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기제다.

원교는 유년시절부터 폐족이라는 아픔을 이겨내며 백하 윤순의 문하에서 글씨를 배웠다. ‘뜻이 앞선 연후에 붓을 잡아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서예에 정진했다. 그러나 백부와 관련된 연좌로 함경도에까지 유배를 당한다. 그러다 다시 1762년 절해고도인 완도 신지도로 이배(移配)된다.

정 작가는 신지도에 유폐된 이광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원교가 15년간 신지도에 머물렀기에 분명히 창작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신지대교가 놓이기 전부터 그곳을 방문했지만 초라한 적거지와 안내판 한 장 없었던”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은 다리도 놓이고 “원교 이광사 거리 조성사업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 기대가 된다.

‘동국진체의 길을 가다’라는 부제처럼 소설은 고통의 삶 속에서도 예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원교의 일생을 그려낸다. 임종 직전 원교가 가물가물한 의식을 끌어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작품은, 주류에서 멀어졌지만 부와 무관한 채 유배객의 인생을 살았던 원교를 초점화한다. 오롯이 글씨에 바친 생애는 흡사 ‘닳아 홀린 몽당붓, 독필 같았다’는 표현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김영삼 평론가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한 예술가’의 인고의 정신과 묵향의 정신이 가득 배어 있다”며 “수많은 자료와 고증을 거쳐 소설적 상상력을 융합해야만 했을 글쓰기의 과정을 생각해볼 때 이 ‘한 예술가’가 원교인지 정강철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평한다.

향후 계획에 대해 정 작가는 조금씩 쓰다가 멈춘 소설을 쓸 예정이라고 했다.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서 우연히 만나 맺어진 연인들의 이야기를 코로나가 끝나면 현지를 방문해 취재하고 보완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한편 정 작가는 문화예술위 3000만원 공모 당선작 장편 ‘블라인드 스쿨’, 소설집 ‘수양산 그늘’을 펴냈으며 ‘바다가 우는 시간’으로 목포문학상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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