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 복원
2021년 08월 05일(목) 02:00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인 경복궁은 1395년 완성됐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의 ‘경복’(景福)은 삼봉 정도전이 시경(詩經)의 한 구절에서 따와 지은 것이다.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지만 1867년 흥선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위해 재건에 나섰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는데 전체 궁은 7225칸 반, 후원의 전각이 256칸, 궁성 담장의 길이가 1765칸에 달했다.

정조는 1794년부터 1796년까지 2년 6개월 만에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주관하에 수원화성을 축성하게 했다. 다산 정약용이 축성의 모든 과정을 계획하고 감독했다. 다산은 자신의 발명품인 활차와 거중기를 축성 공사에 사용했다.

청렴을 중시한 유교 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의 대역사(役事)는 한양의 궁궐이나 왕이 주도한 그 주변 성곽에 한정돼 있었다. 사치를 금하다 보니 왕족이나 양반이라도 99칸이 넘는 집은 지을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장헌대왕실록 권 51에는 ‘가사규제’(家舍規制)를 통해 왕족·대신·서인 등의 기와집 규모를 규제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초석 이외의 석재에 마름돌 사용이나, 기둥머리에 두공을 짜 올리는 것, 장식으로 단청을 입히는 것 등도 금지했다.

광주 등 지방의 부목군현(府牧郡縣)에는 읍성 내 동헌이나 객사 등의 시설을 두었다. 궁의 축소 모형인데 한양의 그것들보다 더 검소하게 건축하는 방식이다. 다만 지방의 중심도시는 자연 여건이나 역사적 사건 등에 근거해 특징 있는 공간을 두기도 했다. 광주읍성, 희경루, 석서정, 동계천·서방천·용봉천, 경양방죽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에 비해 광주는 구도심의 매력을 높일 자원이 드물 수밖에 없다.

숨을 멎게 하는 고층 아파트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여전히 광주의 핵심이자 태 자리는 구도심이다. 현재와 미래를 담아 옛 자원들을 다시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다만 사람을 불러 모을 ‘킬러 콘텐츠’ 없이 옛 모습만 그저 똑같이 본뜬 ‘박제’를 만드는 데 혈세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철저히 구도심의 재생과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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