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인종차별
2021년 07월 15일(목) 02:00 가가
피아니스트이자 명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를 들을 때면 좀 복잡한 마음이 든다. 유려한 피아노 연주에 빠져들다가도 순간순간 불행했던 한 여성의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바로 바렌보임의 아내 자클린 뒤 프레다. 첼리스트였던 그녀가 다발성 경화증에 걸려 연주 인생을 접고 외롭게 투병할 때 남편은 다른 여성을 만나 뒤프레 곁을 떠났다. 결국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중 한명이었던 그녀는 이후 병세가 악화돼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바렌보임을 생각하면 또 한 사람이 떠오른다. 분리와 차별에 평생 저항해 온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다. 이스라엘에서 성장한 유대인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인 사이드는 음악을 매개 삼아 두 나라의 공존과 화합을 기원하는 평화 프로젝트로 ‘서동시집 관현악단’(West-Eastern Divan Orchestra)을 창단했다. 1999년 괴테의 시집(詩集)에서 이름을 따 창단한 이 오케스트라는 ‘물과 기름’같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 아랍국가 청년들로 구성됐다. 지난 2011년에는 판문점에서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하며 화합의 평화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먼이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해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온라인 마스터 클래스에서 아시아계 학생 2명을 가르치던 중 “일본과 한국은 노래하는 DNA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빨리 연주하면 최고인 줄 안다”고 차별적 발언을 한 모습이 담긴 또 다른 영상도 있다. 논란이 되자 그는 “문화적으로 둔감한 언급이었다.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그가 히틀러가 자행한 인종차별 정책으로 가장 고통받았던 유대인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애초 발언은 더더욱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이다.
바렌보임은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없겠지만 그 시작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화합과 이해가 필요한 시기에 그런 음악을 들려주고 또 가르치는 이가 차별과 경계와 분리를 조장한다면, 그가 아무리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다 할지라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할 것이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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