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장수 문순득
2021년 07월 14일(수) 04:00
1801년 12월 신안 우이도를 출발한 문순득은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 가지고 돌아오다 1802년 1월 18일 태사도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된다. 이때부터 1805년 1월 8일 다시 고향 우이도로 돌아올 때까지 3년 2개월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문순득의 첫 표류지는 류큐국(일본 오키나와)이었다. 이곳에서 9개월을 머물다 귀국하기 위해 조공선을 타고 중국으로 출발했다. 조선으로 바로 오지 못한 이유는 당시 약탈을 일삼는 왜구 때문에 중국을 거쳐 육로로 귀국하는 송환 시스템 때문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표류하게 되고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이 여송국(필리핀)의 루손섬이었다. 8개월 만에 필리핀을 떠난 문순득은 마카오에 상륙한 후로는 비교적 순탄하게 육로를 통해 이동했다. 난징과 베이징 등 중국에서 1년2개월간 체류하다 한양을 거쳐 고향에 돌아왔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표류기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문순득이 신안에 유배와 있던 정약전을 만났기 때문이다. 정약전은 문순득의 기막힌 표류 이야기를 듣고 95쪽 분량의 ‘표해시말’을 썼다. 문순득은 언어와 문화 습득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류큐국과 여송국에서 경험한 색다른 문화를 현지 언어를 곁들여 소상하게 설명했고, 이것이 표해시말에 고스란히 담겼다. 표해시말에는 한자 단어 112개와 유구어(오키나와어) 81개, 여송어(필리핀어) 54개가 기록돼 있어 언어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문순득은 정약전·정약용 형제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정약전은 문순득에게 ‘하늘 아래 최초의 세계 여행자’라는 뜻에서 ‘천초’(天初)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정약용은 문순득이 정약전의 장례를 잘 치러준 데 보답하기 위해 문순득의 아들 이름을 ‘여환(呂還)’이라 지어 주었다. ‘머나먼 표류길에서 돌아왔다’는 의미가 담겼다.

220년전 홍어 장수 문순득의 생생한 표류기를 만날 수 있는 축제가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신안 자은도에서 열린다. ‘신안국제 문페스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문순득이 표류한 필리핀 등 3개국 도시에서는 참가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욱 오붓하게 문순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싶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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