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2021년 07월 12일(월) 05:30
권력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사람들이 왜 권력에 복종하는지’에 대한 연구의 역사도 유구하다. 연구의 출발점이나 목표야 서로 다르겠지만, ‘권력’이 역사와 함께 태동했다는 점 그리고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작동 방식 그리고 권력에 복종하는 이유’에 대한 결론은 큰 틀에서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1548년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드 라보에티가 쓴 ‘자발적 복종을 배격한다’는 제목의 소논문은 사람들이 ‘왜 권력에 복종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라보에티는 사람들이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첫 번째 이유로 ‘내가 사는 세상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관습’을 들었다. 그리고 ‘시스템을 토대로 한 견고한 피라미드식 조직망’과 ‘사후에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교리 아래 순종과 인내를 가르치는 종교’도 주요 이유로 제시했다.

라보에티는 결론에서 권력자의 억압과 착취를 극복하는 해법으로 ‘자발적 복종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이를 통해 ‘본질적 권리인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고 지켜 내려는 노력’을 제시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국가가 어째서 권력자의 통치와 억압을 참아 내는지가 논의의 출발점이었던 이 논문은 이후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려 473년 전 발표되긴 했지만, 이 논문은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라면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강력한 미디어를 활용해 세상의 왜곡된 이미지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강고한 행정력으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물론 종교를 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대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지구촌에서 본격화하고 있는 제2의 냉전(cold war)이 ‘대규모 국가 간 충돌’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우리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경고음이 커져 가는 모습이다. 신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냉전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일부 몇몇 권위적 정부의 전략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위기를 해소하는 데 라보에티의 해법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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