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서커스
2021년 06월 27일(일) 23:10
고대 로마의 지배층은 도시의 부를 장악한 부유층이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이 쌓아 올린 막대한 부의 모퉁이를 허물어 대규모 공공건물을 지었다. 로마 곳곳에 목욕탕·극장·도서관을 지어 기증하거나, 상하수도와 도로 등을 건설해 도시를 정비하기도 했다. 또한 굶주린 시민들에게 수시로 식량을 나눠 주고 검투사 경기를 오락물로 제공함으로써 민심을 얻었다.

오늘날 에베르제티즘(evergetism)이라고 불리는 이 같은 자선 행위는 당시 로마 지도층에게는 일종의 의무로 간주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사회 고위층 인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라면, 에베르제티즘은 도덕적 의무를 실행하는 ‘실천 방안’이었던 셈이다.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라는 유명한 표현대로, 고대 로마의 부유층은 시민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소일거리를 제공했다. 시민들은 빵과 서커스가 제공되는 한 그들을 지배층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로마 귀족과 지배층의 이 같은 자선 행위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측은지심’은 결코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이나 권모술수를 통해서 또는 부모형제를 잘 만나 운 좋게 손에 쥔 돈·권력·명예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리고 탈 없이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강요된 자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로마 지배층은 적어도 ‘남의 위에 서려면 스스로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인식했다. 그리하여 다양한 자선 행위를 통해 사회 구성원과 소통을 시도함으로써 도덕적 권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비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이 부동산 문제가 드러난 소속 국회의원 10명에게 탈당을 요청하고 또 다른 2명을 제명했다. 이는 사회 지도층으로서 국민의 고통과 설움을 헤아린 조치라 해도 좋을 터이다. 하지만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부동산 의혹을 해소하겠다면서도, 소속 국회의원 상당수의 직계 존비속에 대한 정보 제공 동의서를 아직까지 제출하지 않는 등 꼼수를 부리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dam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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