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2021년 06월 21일(월) 03:30
고래잡이를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 ‘모비 딕’(1851)은 시대를 초월한 고전이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은 향유고래에게 받혀 침몰한 포경선에서 영감을 얻어 소설을 썼다. 흰고래인 ‘모비 딕’은 ‘백경’(白鯨)으로도 번역되는데 한편으로는 ‘자연’이나 ‘신화’를 상징한다.

에이허브 선장은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뒤 오로지 ‘모비 딕’이라는 고래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그와 달리 포경선에 오르는 것이 꿈이었던 이스마엘은 침착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오랜 항해 끝에 모비 딕을 발견한 에이허브는 3일간의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무모한 복수심 탓에 그는 결국 작살의 밧줄에 감겨 바다에 수장되고 만다. 다른 선원들과 배도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스마엘은 후일 바다에서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긴다.

얼마 전 CNN 등 외신에 ‘고래 입속에서 살아 돌아온 잠수부’라는 이야기가 보도됐다. 바닷가재를 잡다가 고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한 미국 어부의 이야기다. 어부는 ‘갑자기 어두워지자 상어에게 물린 거라 생각했는데, 얼마 후 고래 입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고래가 자신을 뱉어내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구약성경에는 고래에게 삼켜 뱃속까지 들어갔다가 살아나온 요나라는 선지자 이야기가 나온다. 요나는 악으로 가득한 니느웨 성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고 배를 탄다. 얼마 후 거센 폭풍이 몰아치자 뱃사람들은 재물을 바치기로 하고 제비뽑기를 한다. 안타깝게도 요나가 그 대상이 되고 그는 물에 던져진다. 3일간 고래 뱃속에 갇혔던 요나는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고 극적으로 살아난다.

인류 역사에서 고래는 경외와 신비, 선과 악, 삶과 죽음 등 다양한 소재로 변주돼 왔다. 그러나 소설에서의 ‘모비 딕’과 혹등고래에서 살아난 어부 그리고 선지자 요나의 사례는 고래와의 대립이 아닌 순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대한 자연에 맞서 생존한 이들은 결과적으로 순리를 따르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이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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