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전성시대
2021년 06월 17일(목) 02:20
오랜만에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할머니의 그림은 언제 봐도 편안하고 사랑스럽다. 76세 되던 해, 손자의 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안나 마리 로버트슨 모지스 할머니는 101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행복한 화가’로 살았다. 할머니가 남긴 그림은 1000여 점이 넘는다. 대표작 ‘설탕 만들기’는 14억 원에 팔렸다. 그녀의 이야기는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란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토트넘의 광팬이자 축구선수 손흥민을 그린 그림으로 눈길을 끈 영국의 로즈 와일리 할머니는 76세에 영국에서 가장 ‘핫한’ 신예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이후 85세에는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았고, 올해 국내에서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인터넷상에서는 ‘칠곡할매 글꼴’이 인기다.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들은 개인 당 2000여 장의 글씨를 써 가며 글꼴을 제작했는데, 그중 5명의 이름을 딴 5개의 글자체가 완성됐다. 글꼴은 음식점 비닐봉투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칠곡군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배포 중이다.

바야흐로 ‘할머니들 전성시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쓰는 말이 아님을 실제로 보여 주는 할머니들의 활약상이 눈부시다. 지난해 여성잡지 ‘보그 코리아’에는 곡성·구례의 할머니들이 모델로 데뷔했고, 순천 할매들의 그림 에세이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출품되기도 했다.

광양에 사는 94세 김두엽 할머니는 얼마 전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란 그림 에세이 책을 펴냈다. 84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 할머니의 이야기는 TV ‘인간극장’에 소개되기도 했다. 5월에는 아들인 이현영 작가와 서울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할머니의 그림을 지난 2018년 고흥남포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꽃과 나무나 해수욕장 풍경 등 ‘동화 같은’ 그림 앞에서 참 행복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이뤄 가는 할머니들의 이런 모습 그 자체가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아닐까. 이들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또다시 마음이 따뜻해진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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