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사회’의 공범들
2021년 06월 16일(수) 03:10 가가
시민 불안해도 업체·지자체는 태연
안전 소홀 원청기업 처벌 시급하다
안전 소홀 원청기업 처벌 시급하다
광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시내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그 짧은 찰나에 수십 톤이나 되는 5층 건물이 도로변으로 무너지면서 아홉 명이 목숨을 잃고 여덟 명은 중상을 입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대형 버스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지금도 모골이 서늘해진다. 사고가 발생한 그 길을 매일 시내버스로 오갔던 터라 더욱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어이없고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한 승객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참으로 가슴이 아리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대면 수업일이라 등교할 필요가 없었지만 동아리 후배들을 챙기느라 일부러 학교에 들렀다가 귀갓길에 참변을 당한 고교생.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의 퇴원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와 함께 병문안을 갔던 효심 깊은 30대 취업 준비생. 고령에도 거동이 불편한 또래 독거노인들의 말벗을 해 준 뒤 귀가하던 70대 할머니.
하나같이 가슴 아린 사연들이다. 사고 이후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희생자들과 일면식도 없지만 이미 시민 수천 명이 생때같은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아픔을 함께했다. 회색빛 잔해 더미가 가득 쌓인 사고 현장 건너편 인도에는 어느 시민이 명복을 빌며 안개꽃 한 다발을 놓아두었다. 거기 함께 놓인 손 편지가 또 가슴을 울린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건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시민 불안해도 업체·지자체는 태연
사람들은 기본을 지키고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고들 입을 모은다. 게다가 철거 현장을 지나던 주민들은 사고 이전에 벌써 그 위험성을 느끼고 잇따라 경고음까지 냈다고 한다. 한 시민은 사고 두 달 전 국민신문고와 광주 동구에 “철거 현장 바로 옆은 차량이 지나가는 도로다. 천막과 파이프로 차단하는 것이 인명 사고 등(을 막을 수 있는지?) 불안해서 알린다”며 철저한 안전 관리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인이 지적한 건물은 사고 건물과 같은 구역의 또 다른 건물이었다. 이에 대해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동구는 “조합 및 해체 시공자에게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안전 조치 명령을 내렸다”라고 답했을 뿐이다. 철저한 현장 점검을 통한 대책 수립 등의 조치는 아예 없었다.
철거 건물 바로 앞의 시내버스 정류장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토로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가 날 때까지 정류장 이설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두 명이나 목숨을 잃은 사고가 지난 4월 계림동에서 일어났지만, 광주시 등 지자체는 이렇다 할 사고 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사고 당일에도 붕괴의 전조가 있었지만 공사 관계자들은 차량을 통제하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들도 감지할 수 있었던 위험을 지자체나 업체들만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유사한 작은 사고와 사전 징후가 선행한다고 한다. 그러한 ‘하인리히 법칙’은 이번 참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안전 불감증과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된 인재(人災)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된 셈이다.
그것은 경찰 수사로도 확인되고 있다.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공사 관련 업체들의 불·탈법 행위와 부실 철거의 흔적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기본상식이다. 그런데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철거 공사를 하청받은 (주)한솔기업은 사실상 1인 회사나 다름없는 (주)백솔건설에 재하도급하는 등 불법 다단계 하청의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공사 금액의 일부만 챙기고 넘기는 이 같은 방식으로 인해 최종 하도급 업체는 수주 금액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기준을 무시하며 졸속·날림 공사를 일삼는 것이다.
안전 소홀 원청기업 처벌 시급하다
지난해 5월 건축물관리법 시행으로 건축물 철거 때 관리자의 해체계획서 작성과 주무 감독청의 감리자 지정도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번 사고 건물 철거 업체가 만들어 동구의 허가를 받은 해체계획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계획서에 쓰인 대로라도 했으면 또 혹시 모를 일이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계획서와는 다르게 최상층부가 아닌 저층부터 철거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위험천만한 공정인데도 감리자 역시 현장에 입회하지 않았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기후변화, 자연재해, 대형 재난 등 새로운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가리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라고 규정했다. 성찰과 반성 없이 성장만을 외치며 질주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꼬집은 것이다.
광주는 전국에서 아파트 비율(66.8%)이 가장 높은데도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미명 아래 도심 곳곳에서 고층 아파트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46곳을 포함해 모두 80여 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도심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이로 인해 건설 현장 주변 시민들은 안전사고 위험을 느끼며 늘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이익에 눈먼 건설업체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관리·감독의 손길은 전혀 미치지 못하니, 비리와 부실이 판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건설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등 불법을 뿌리 뽑고,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세부 기준도 더욱 촘촘히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 관리에 대한 포괄적 권한과 의무가 있는 원청 사업주에 대해 엄하게 책임을 묻는 일이다. 그동안 발생한 숱한 중대 재해가 ‘인재’로 드러나도 정작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자칫 우리 모두가 ‘위험 사회’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이번에야말로 진상을 정확히 가려낸 뒤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이사>
사람들은 기본을 지키고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고들 입을 모은다. 게다가 철거 현장을 지나던 주민들은 사고 이전에 벌써 그 위험성을 느끼고 잇따라 경고음까지 냈다고 한다. 한 시민은 사고 두 달 전 국민신문고와 광주 동구에 “철거 현장 바로 옆은 차량이 지나가는 도로다. 천막과 파이프로 차단하는 것이 인명 사고 등(을 막을 수 있는지?) 불안해서 알린다”며 철저한 안전 관리를 요청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인이 지적한 건물은 사고 건물과 같은 구역의 또 다른 건물이었다. 이에 대해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동구는 “조합 및 해체 시공자에게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안전 조치 명령을 내렸다”라고 답했을 뿐이다. 철저한 현장 점검을 통한 대책 수립 등의 조치는 아예 없었다.
철거 건물 바로 앞의 시내버스 정류장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토로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가 날 때까지 정류장 이설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두 명이나 목숨을 잃은 사고가 지난 4월 계림동에서 일어났지만, 광주시 등 지자체는 이렇다 할 사고 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사고 당일에도 붕괴의 전조가 있었지만 공사 관계자들은 차량을 통제하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들도 감지할 수 있었던 위험을 지자체나 업체들만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유사한 작은 사고와 사전 징후가 선행한다고 한다. 그러한 ‘하인리히 법칙’은 이번 참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안전 불감증과 무사안일주의에서 비롯된 인재(人災)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된 셈이다.
그것은 경찰 수사로도 확인되고 있다.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공사 관련 업체들의 불·탈법 행위와 부실 철거의 흔적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기본상식이다. 그런데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철거 공사를 하청받은 (주)한솔기업은 사실상 1인 회사나 다름없는 (주)백솔건설에 재하도급하는 등 불법 다단계 하청의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공사 금액의 일부만 챙기고 넘기는 이 같은 방식으로 인해 최종 하도급 업체는 수주 금액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기준을 무시하며 졸속·날림 공사를 일삼는 것이다.
안전 소홀 원청기업 처벌 시급하다
지난해 5월 건축물관리법 시행으로 건축물 철거 때 관리자의 해체계획서 작성과 주무 감독청의 감리자 지정도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번 사고 건물 철거 업체가 만들어 동구의 허가를 받은 해체계획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계획서에 쓰인 대로라도 했으면 또 혹시 모를 일이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계획서와는 다르게 최상층부가 아닌 저층부터 철거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위험천만한 공정인데도 감리자 역시 현장에 입회하지 않았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기후변화, 자연재해, 대형 재난 등 새로운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가리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라고 규정했다. 성찰과 반성 없이 성장만을 외치며 질주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꼬집은 것이다.
광주는 전국에서 아파트 비율(66.8%)이 가장 높은데도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미명 아래 도심 곳곳에서 고층 아파트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46곳을 포함해 모두 80여 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도심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을 방불케 할 정도다. 이로 인해 건설 현장 주변 시민들은 안전사고 위험을 느끼며 늘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이익에 눈먼 건설업체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관리·감독의 손길은 전혀 미치지 못하니, 비리와 부실이 판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건설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하도급 등 불법을 뿌리 뽑고,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세부 기준도 더욱 촘촘히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 관리에 대한 포괄적 권한과 의무가 있는 원청 사업주에 대해 엄하게 책임을 묻는 일이다. 그동안 발생한 숱한 중대 재해가 ‘인재’로 드러나도 정작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자칫 우리 모두가 ‘위험 사회’의 공범이 되지 않으려면 이번에야말로 진상을 정확히 가려낸 뒤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