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을 들고 다니는 남자 - 정유진 코리아 컨설트 대표
2021년 06월 14일(월) 07:00 가가
우리 가족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중심에는 요리가 있다. 여행을 통해 접한 다양한 음식 맛에 눈을 뜨면서 시작된 가족의 집밥 만들기는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 진화 중이다. 남편은 바베큐, 초등학생 아들은 일식, 나는 정체 모를 퓨전 음식 등 이제는 각자 전문 분야까지 생겼다. 그래 주말 저녁이면 으레 각기 만든 음식 시식과 맛 품평회로 소란스럽다.
물론 우리 가족에도 외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자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무리 집밥에 미쳐 있다지만 평일의 그 짧은 점심시간까지 매번 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때가 바로 외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잠시 외출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지만 서둘러 집을 나선다. 이유는 버려야 할 플라스틱 용기들로 마음이 편치 않은 배달음식 주문만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날도 집에서 편안히 먹을 수 있다는 유혹을 떨치고 아들과 함께 동네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꽤나 분주했고 가게 문이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혔다. 여기까진 익숙한 우리 동네 식당의 점심시간 풍경이었다. 가게 안으로 큼지막한 스테인리스 솥을 든 30대 초반의 젊은 남성이 들어올 때까지 말이다.
마치 서부영화에 곧잘 등장하는 마을 선술집 장면처럼 남성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출입문으로 행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신기할 것 없는 일인데 그날따라 점심을 먹으러 온 나를 포함한 가게 안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 남성을 주시했다. 아마도 그를 둘러싼 배경화면이 그와는 너무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리라. 30대 초반의 남성이 솥에 담길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일사불란하게 줄지어 나온 포장 음식 꾸러미들이 차례차례로 도착한 헬멧 차림의 음식 배달원의 손에 들려 나갔다.
그 많은 배달 음식 꾸러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식사 후 집에 와서도 솥을 든 남자와 배달 음식의 이미지가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 아들이 물어 온 툰베리의 근황과 장 볼 때마다 신경 쓰이는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019년, 세계는 한 어린 환경운동가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당시 1년간의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4800Km의 항해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기후 변화에 대한 행동을 촉구했던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과학 전문지 더 뉴사이언티스트(The New Scientist)는 2019년을 그레타 툰베리와 시위대의 활동으로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해 마침내 눈을 뜨게 된 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2019년 이후로 이런 기후변화에 대한 진지한 각성과 실천의 노력은 잘 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5월 영국 가디언에 게재된 개인의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과 관련한 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이 영국과 함께 호주·미국에 이어 3위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양이 무려 일년, 일인 기준으로 약44 Kg에 이르며 그중 플라스틱의 재활용은 세계적으로 10~15% 정도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니 실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또한 같은 해 환경부에서 발표한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하루 평균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13년 4365톤에서 2018년 6375톤으로 5년 사이 무려 46%나 증가했다고 한다. 모두 2019년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내용인데 이쯤 되면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한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은 작년과 올해 얼마나 더 무섭게 늘어난 것일까?
요즘 들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다. 이 단어는 듣거나 보기만 해도 동경하고 따라하고 싶은 멋있고 세련된 삶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핫하다는 상품 판매를 위해 개인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업계가 좋아하는 유행어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본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개인의 행동 패턴이자, 가치와 취향을 반영한 자기 삶의 표현 방식을 의미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은 강제적 제재에 의해 더 이상 같은 행동 양식으로 해야만 하는 실천이 아니다. 얼마든지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 습관을 만들 수 있다. 개인의 작은 습관들이 모여 만들어진 루틴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라이프 스타일로 함께 공유될 수 있을 것이다. 손수건이나 텀블러를 들고 다니거나 스텐 솥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 정유진 코리아 컨설트 대표가 월요광장 새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정 대표는 광주비엔날레재단 전시 코디네이터를 지냈고 ‘숄츠 앤 융갤러리’와 ‘쿤스트라운지’를 운영했으며 현재 라이프 스타일 큐레이션 및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는 문화 전문가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삶의 경험을 녹여 낸 글을 통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색다른 삶의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 많은 배달 음식 꾸러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식사 후 집에 와서도 솥을 든 남자와 배달 음식의 이미지가 좀처럼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 아들이 물어 온 툰베리의 근황과 장 볼 때마다 신경 쓰이는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2019년, 세계는 한 어린 환경운동가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당시 1년간의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4800Km의 항해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기후 변화에 대한 행동을 촉구했던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과학 전문지 더 뉴사이언티스트(The New Scientist)는 2019년을 그레타 툰베리와 시위대의 활동으로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해 마침내 눈을 뜨게 된 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2019년 이후로 이런 기후변화에 대한 진지한 각성과 실천의 노력은 잘 되고 있는 것일까?
지난 5월 영국 가디언에 게재된 개인의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의 양과 관련한 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이 영국과 함께 호주·미국에 이어 3위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쓰고 버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양이 무려 일년, 일인 기준으로 약44 Kg에 이르며 그중 플라스틱의 재활용은 세계적으로 10~15% 정도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니 실로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또한 같은 해 환경부에서 발표한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하루 평균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은 2013년 4365톤에서 2018년 6375톤으로 5년 사이 무려 46%나 증가했다고 한다. 모두 2019년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내용인데 이쯤 되면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인한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량은 작년과 올해 얼마나 더 무섭게 늘어난 것일까?
요즘 들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다. 이 단어는 듣거나 보기만 해도 동경하고 따라하고 싶은 멋있고 세련된 삶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핫하다는 상품 판매를 위해 개인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업계가 좋아하는 유행어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본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개인의 행동 패턴이자, 가치와 취향을 반영한 자기 삶의 표현 방식을 의미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행동은 강제적 제재에 의해 더 이상 같은 행동 양식으로 해야만 하는 실천이 아니다. 얼마든지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 습관을 만들 수 있다. 개인의 작은 습관들이 모여 만들어진 루틴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라이프 스타일로 함께 공유될 수 있을 것이다. 손수건이나 텀블러를 들고 다니거나 스텐 솥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 정유진 코리아 컨설트 대표가 월요광장 새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정 대표는 광주비엔날레재단 전시 코디네이터를 지냈고 ‘숄츠 앤 융갤러리’와 ‘쿤스트라운지’를 운영했으며 현재 라이프 스타일 큐레이션 및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는 문화 전문가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삶의 경험을 녹여 낸 글을 통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색다른 삶의 시각을 제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