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과 사다리
2021년 06월 14일(월) 04:00 가가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가 있다. 사다리를 타거나 줄을 잡고 올라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둘 다 똑같이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줄은 하늘에 기원을 두고 사다리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점이 첫째다. 줄은 누군가 은혜롭게 내려 줘야 하지만 사다리는 자신이 수고해 가며 세워야 한다는 점이 둘째다.
우리 전통신화와 설화에는 이런저런 줄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꾼과 선녀’에서 ‘두 아이와 함께 깃옷을 입고 승천해 버린’ 선녀 아내를 찾아 하늘로 올라가려는 나무꾼이 사용한 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준 두레박줄이다. 또 다른 전래 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피해 도망갈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하늘에서 누군가 내려준 ‘동아줄’이다. 이밖에 농경신의 내력이 담긴 제주 ‘세경본풀이’에서 문 도령이 사랑하는 아내 자청비를 떼어 놓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타고 간 것도 ‘노각성자부줄’이라는 ‘줄’이다.
‘성공하려면 줄을 잘 잡아야 한다’는 시쳇말은 ‘줄’이 성공의 문을 여는 열쇠로 여겨졌던 과거의 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공정과 평등’이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줄’이 아닌 ‘사다리’가 우리 사회의 대세가 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는 엄마 찬스, 아빠 찬스, 고향 찬스, 동문 찬스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크게 늘어난 때문일 터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의 마음을 붙잡아야 하는 정치인들 관련 모임에 ‘사다리’라는 말이 들어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여권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 모임 ‘공정 사다리 포럼’과 ‘희망 사다리 포럼’, 그리고 또 다른 대선주자 정세균 전 총리 지지 모임인 ‘균형 사다리’가 바로 그러한 예다.
시대정신이 변화하면서 ‘입신양명’을 위한 혈연·지연·학연의 네트워크로 변질돼 버린 ‘줄’을 사다리가 대신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사다리가 ‘높이 매달린 줄을 잡기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행기 정치부장redplane@kwangju.co.kr
그래서 그런지 국민의 마음을 붙잡아야 하는 정치인들 관련 모임에 ‘사다리’라는 말이 들어가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여권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 모임 ‘공정 사다리 포럼’과 ‘희망 사다리 포럼’, 그리고 또 다른 대선주자 정세균 전 총리 지지 모임인 ‘균형 사다리’가 바로 그러한 예다.
시대정신이 변화하면서 ‘입신양명’을 위한 혈연·지연·학연의 네트워크로 변질돼 버린 ‘줄’을 사다리가 대신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사다리가 ‘높이 매달린 줄을 잡기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행기 정치부장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