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
2021년 06월 10일(목) 06:00 가가
정부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힘은 막강하다. 다른 부처 장관이 기재부 사무관에게 직접 연락해 정책과 사업을 논의할 정도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 또한 기재부 담당 공무원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니 이른바 ‘갑중의 갑’인 셈이다. 담당 직원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기재부 공무원들은 국가 곳간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 엘리트라는 자부심도 강하다.
논리나 근거가 빈약하면 퇴짜를 맞기 때문에 정부 부처나 지자체 공직자들은 기재부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노력을 해도 연줄이나 인맥이 없고, 연구 개발 능력이 미흡한 지자체들은 상대적으로 홀대를 받는다. 게다가 기재부에서는 경제성과 효율성만 중시하기 때문에 기반을 갖춘 지역과 그렇지 못한 곳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기도 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토지수용권·용도변경권·용지개발권 등의 특권을 갖고 있다. 정직원 수가 1만 명, 매출액은 20조 원이 넘는 그야말로 ‘공룡 조직’이다. LH가 이처럼 거대 조직이 된 것은 짭짤한 토지 매각 수익으로 인해 커진 토지공사와 서민 대상의 저렴한 임대 주택 보급으로 인해 부채가 쌓인 주택공사가 하나로 결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룡이 된 LH는 계속 그 규모를 키우고 임직원들의 연봉을 올리느라 수익성이 높은 사업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집값 안정, 서민들의 내 집 마련 등에는 소홀하고, 신도시 개발 등 ‘땅 장사’에 눈을 고정해야 했다. 싼 값에 외곽 토지를 수용한 뒤 용도를 변경해 건설업체에 땅을 분양했다. 건설업체들은 여기에 건축비나 수익 등을 붙이니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했다. 결국 신도시 개발로 LH와 건설업체들만 막대한 이익을 취했다.
19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왕을 보좌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관료제는 20세기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국민국가가 성립되고 그 업무가 확대·심화되면서 관료제 또한 거대해졌다. 고도성장과 함께 ‘갑’이 된 기재부와 ‘공룡’이 된 LH는 이제 ‘관치’의 사고에서 벗어나 국가의 균형 발전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19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왕을 보좌하면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관료제는 20세기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국민국가가 성립되고 그 업무가 확대·심화되면서 관료제 또한 거대해졌다. 고도성장과 함께 ‘갑’이 된 기재부와 ‘공룡’이 된 LH는 이제 ‘관치’의 사고에서 벗어나 국가의 균형 발전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