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남자기
2021년 06월 02일(수) 04:00 가가
행남자기는 국내 최초의 ‘생활 도자기’ 브랜드로 1942년 목포에서 설립된 행남사가 모태다. 회사명이 행남사와 행남자기로 자주 바뀌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명가였기에 그 브랜드 파워는 막강했다. ‘행남’(杏南)사의 로고는 살구나무로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을 상징한다.
국내 도자기 업계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은 거의 행남사가 가지고 있다. 1953년 국내 최초로 커피 잔 세트를 생산했고 1963년에는 홍콩에 처음으로 수출 길을 텄다. 1974년 스톤웨어를 개발해 미주지역에 본격적으로 수출했고 1985년에는 도자기 플랜트 및 기술 용역을 베네수엘라에 전수했다. 모두 국내 최초 기록이다. 1986년 국내 최초로 민간도자기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30여 건의 신소재 및 유약 등을 자체 개발해 이듬해 정부로부터 세계 일류화 상품 추진 업체로 지정됐다.
1989년에는 자체 개발한 본차이나 식기가 KS마크를 획득했고 인도네시아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무대를 세계로 넓혔다. 이 같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1993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고 2004년에는 도자기 업계 최초로 위생안전 품질인증인 HS마크를 획득했다.
출시하는 제품마다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50년대에는 본차이나인 ‘홍장미 세트’가 인기를 끌었고 60년대에는 양식기로 혼수시대를 열었다. 70년대는 인테리어 커피 세트를 출시했고 80년대 나온 화려한 문양의 골드에 백금이 조화를 이루는 ‘홈세트 킹’은 상류층의 인기 아이템이었다. 90년대 ‘골든로즈’와 2000년대 ‘경복궁 7첩’은 현대와 전통이 어우러진 명작이었다. 행남사의 식기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에 사용됐으며 12월 스웨덴에서 열린 노벨상 시상식 공식 만찬장에도 올랐다.
하지만 창업주 4세로 이어진 경영권이 2015년 넘어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6년간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면서 본업과 상관없는 영화·식품사업에 손을 댔다가 결국 상장 폐지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행남사는 정리매매를 거쳐 오는 7일 증권시장에서 사라진다. 스러져 가는 향토 기업의 뒷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아리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kwangju.co.kr
하지만 창업주 4세로 이어진 경영권이 2015년 넘어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6년간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면서 본업과 상관없는 영화·식품사업에 손을 댔다가 결국 상장 폐지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행남사는 정리매매를 거쳐 오는 7일 증권시장에서 사라진다. 스러져 가는 향토 기업의 뒷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아리다.
/장필수 제2사회부장 bung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