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증언
2021년 05월 28일(금) 05:30
현대사의 비극은 대부분 전쟁에서 비롯되는데, 학살과 인권 침해는 전쟁이나 독재국가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위는 시간의 문제일 뿐 반드시 그 진상이 밝혀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대 역사는 휴머니티를 회복하는 과정이라 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3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나 거론됐지만 지금은 국제사회가 모두 반인륜 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그 시작은 용기 있는 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서 비롯됐다. 지난 1991년 김학순(1924~1997년) 씨가 세계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고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국내는 물론 필리핀·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김학순 씨는 17세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4개월 만에 탈출했다. 이후 가정도 이뤘지만 순탄치 않은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 씨가 증언을 결심한 것은 지난 1990년 6월이다.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운영했을 뿐 일본군은 관여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발표에 분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위안부 탈출 후 50년을 고통 속에 살았던 김 씨는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여생을 바쳤다.

현대사에서 미국의 가장 큰 굴욕은 베트남전 패배이며, 전쟁 중에 있었던 ‘미라이 학살’은 양민 학살이라는 점에서 미군의 지울 수 없는 수치로 꼽힌다. 미군은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에서 504명의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했는데, 이 중 절반가량이 임산부와 유아·어린이였다고 한다. 이 사건은 군부의 엄격한 통제로 1년간 철저히 은폐됐다. 하지만 당시 종군기자를 비롯한 언론의 노력과 학살에 가담했던 병사의 양심선언으로 진실이 밝혀졌다.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인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가해자인 계엄군들의 의미 있는 증언이 많았다. 특히 저격수였던 한 계엄군은 1980년 5월21일 장갑차 위에서 지시에 따라 조준경으로 청년의 목을 겨냥해 쐈다고 증언했다. 자위권 차원이 아닌 의도적 사살임을 입증하는 증언이다. 80년 그날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계엄군들이 용기 있는 증언에 나서 주길 바란다.

/채희종 사회부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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