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조건
2021년 05월 13일(목) 04:20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제각기 여건에 따라 임기를 달리 정한다. 스위스 같은 곳은 1년이며, 미국은 4년으로 재선이 가능하지만 3선은 할 수 없다. 7년이었던 프랑스는 지난 2000년 국민투표를 거쳐 5년으로 줄였는데, 러시아는 오히려 2008년 같은 방법으로 4년 임기를 6년으로 늘렸다.

하지만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부분 임기를 4년이나 5년으로 정한 것은 오랜 기간 국가권력을 좌우할 경우 그 부작용을 염려한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5년이지만 재선은 안 된다. 미국과 같이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간간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대세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줄곧 개혁을 추진해 왔다. 박근혜 정부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된 뒤 국민의 염원을 담은 ‘촛불’ 덕분에 탄생했기 때문이다. 국민 대다수는 개혁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사법·교육·재벌·부동산 문제 등 국가 체제 전반에 대한 혁신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부모의 지위·부·권력이 마치 계급처럼 승계되고 있으며, 수도권은 블랙홀처럼 지방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1년 정도밖에 임기가 남지 않은 지금은, 냉정한 평가와 함께 최소한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다. 대통령 본인도 인정했지만 부동산 정책은 분명 실패였다. 투기 세력이 지배해 엉망진창이 돼버린 부동산 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교육·재벌 등의 분야에서도 과거에 비해 나아진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국가 균형 발전에 있어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후퇴했다는 점에서 낙제란 평가를 내려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지난 2005년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에서 개혁의 조건으로 다음 몇 가지를 말했다. 어젠다의 제시, 미래지향적인 방향 설정, 공신의 숙청 및 예외 없는 원칙 적용, 공공선 추구 등이 그것이다. 시간은 별로 없지만 문재인 정부 또한 초심으로 돌아가 이러한 개혁 조건을 하나하나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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