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갑질
2021년 05월 03일(월) 05:30
국제사회는 철저히 ‘약육강식’의 원리가 적용되는 비정한 무대다. 정해진 법률에 따라 모든 구성원이 일정한 보호를 받는 개별 국가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이 작동한다. 겉으로는 ‘우호’ ‘친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제론 ‘약자가 강자에게 잡아먹히는’ 냉정한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고갈되어 가는 유한한 자원을 두고 겨뤄야 하는 만큼 ‘법보다 주먹이 우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엔 전쟁과 같은, 한 국가의 존폐를 좌우할 만한 극단적이고 강력한 형태의 충돌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각국 지도자들 사이에선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하는 갑질이 여전히 존재한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전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재임 당시 외국 정상들에 대한 악평으로 갑질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통화를 하면서 직접 ‘바보’(stupid)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러시아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고 비난했다. 또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통화에서도 ‘바보’(fool)라고 부르며 “줏대가 없다”고 쏘아붙였다. 이 같은 트럼프의 갑질에 메르켈 총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메이 전 총리는 ‘허둥거리며 불안해했다’고 CNN은 전했다.

이제는 민간인이 된 트럼프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악담을 퍼부었다.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달 23일 이메일 성명에서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또 협상가로서 약했다”며 좋지 않게 평가했다. 물론 문 대통령이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변죽만 울렸다”고 평가한 데 대한 불만 섞인 반응으로 보이지만, 지나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동맹국 지도자들에게 ‘굴욕감을 안겨 주는’ 트럼프의 태도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등에 업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외국 전직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별다른 공식 반응을 내지 않은 청와대를 보면서 쓰린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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