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2021년 04월 30일(금) 05:00
비록 미식가는 아니지만 봄철이면 으레 식탁에 봄나물 한두 가지쯤은 올려 먹는다. 냉이 된장국이나 쑥국을 끓이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두릅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 입맛이 없을 때면 달래장에 밥을 비벼 먹는 맛도 그만이다. 부모님의 고향이 대나무의 고장인 담양인지라 이맘때 죽순 초무침을 먹는 것도 습관이 됐다.

나물마다 맛과 영양도 다르고 요리법도 다양하지만 죽순만큼 용도가 많고 사연이 많은 나물은 없을 것이다. 예로부터 죽순은 은은한 향에 아삭한 식감을 지닌 진귀한 음식이라 하여 ‘산진’(山珍)으로 불렸다. 그래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일본에서도 고급 식재료로 쓰였다.

대나무는 세계적으로 1400여 종이 있는데 한국 대나무는 맹종죽·왕대·솜대·오죽 등 모두 14종이다. 전남 지역에는 왕대와 솜대가 많고 경남에는 맹종죽, 강원에는 오죽이 주를 이룬다. 그중 맹종죽이란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1800년 전 중국 오나라에 이름난 효자로 ‘맹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맹종은 어느 겨울 병든 노모가 드시고 싶다는 죽순을 구하러 대나무밭에 들어갔다. 하지만 때가 아니라 구할 수 없어 대나무를 붙잡고 슬피 울었다. 한데 갑자기 눈속에서 죽순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맹종읍죽’(孟宗泣竹)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 중국 사람들은 이를 가장 아름다운 효(孝) 이야기로 꼽는다.

중국인들이 죽순을 즐긴 것은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예로부터 죽순을 선비의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북송 시대 시인 소동파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고기는 먹지 않아도 되지만 죽순 없이는 못 산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지고 죽순이 없으면 저속해진다. 빠진 살은 회복할 수 있지만 저속한 사람은 쓸모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철 죽순을 구한 효자 설화가 곳곳에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효도를 상징하는 죽순과 장수를 상징하는 잉어를 함께 그린 민화가 유행하기도 했다.

담양군이 대표 관광지인 죽녹원 대숲을 보호하기 위해 죽순 불법 채취를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죽순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아름다운 대숲 보존을 위해 죽녹원의 죽순은 눈으로만 즐기자. /채희종 사회부장 chae@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