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촌
2021년 04월 26일(월) 05:30
윤동주 시인의 고향은 중국의 북간도 명동촌이다. 증조부 윤재옥 때 함경북도 종성에서 북간도 자동으로 이주했으며 1900년 조부 윤하현이 다시 명동촌으로 옮겼다. 당시 조선인들은 일제 수탈을 피하거나 독립 투쟁을 위해 북간도로 이주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윤하현 장로는 함경도 출신 김약연 등과 명동촌에 터전을 잡았다. 윤동주 부친 윤영석은 명동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인재를 양성했다.

지난 2017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전문지 ‘시산맥’ 회원들과 명동촌으로 문학기행을 간 적이 있다. 허름한 방과 부엌, 손때 묻은 살림살이는 마치 윤동주가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명명된 표지석은 윤동주는 죽어서도 ‘독립된 조국’의 시인이 아닌 이역만리를 떠도는 ‘이방인의 시인’으로 다가왔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중국 지방 당국은 명동촌에 99개 객실을 갖춘 숙박 시설을 건립하는 등 관광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옌볜 조선족자치주 룽징 당국은 ‘중국 조선족 저명 시인’인 윤동주와 관련된 문화관광자원 등을 활용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중국 정부는 표준어 확대 정책을 위해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중국어 교육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에 이어 지난해에는 조선족 자치구가 대상이 됐는데 궁극적으로 한글 등 소수 민족 언어가 퇴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구한말 독립운동 등을 위해 중국으로 이주했던 조선족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문화를 일궈 왔다. 그동안 중국은 한국 전통음식인 김치의 기원 등 문화적 논란을 일으켰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중국 조선족 시인’이라는 호칭으로 윤동주를 관광에 이용하려는 행태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시정 요구가 필요한 이유다.

윤동주의 아호 ‘해환’(海煥)은 ‘바다처럼 빛나게 살라’는 뜻이다. ‘동방을 밝히기’ 위해 명동촌(明東村)에 터전을 잡았던 집안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언어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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