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세대를 뛰어 넘는 공감
2021년 04월 09일(금) 08:00
요리를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직업으로 택한 이후 가장 재미있는 주제의 제안이 들어왔다. 한 방송국에서 어린이와 미식회를 진행하여 동영상 채널에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어린이와의 미식회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우선 어린이들의 연령대가 궁금했다. 어린이들은 24개월, 6세, 7세, 9세의 남·여아라고 한다. 어린이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다.

그동안 세대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어 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신세대와 구세대로 양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매우 다양해졌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선배들은 베이비붐 세대라 한다, 나는 386 세대이고 아래 후배들은 X세대다. IMF와 월드컵을 겪어낸 세대는 Y세대 Z세대 즉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Z세대까지 다 써먹었으니 더 이상 세대를 구분할 글자도 없다.

그런데 음식을 나눌 대상이 채 열 살도 안 된 어린이라고 하니,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고심이 깊어졌다. 메뉴는 준비하는 내내 24개월 어린이가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내가 하는 음식은 중국음식인데 이 어린이들이 나를 통해서 처음으로 중국음식을 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들어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요리의 가짓수는 열 가지로 정했다. 육지에서 구할 것과 바닷재료 등으로 골고루 선택하고, 각각의 재료에 사용할 양념은 어린이들이 먹을 수 있을까 고심하면서 메뉴를 만들고 수정해 나갔다. 매일 하는 요리지만 그래도 어린이들이 잘 먹게 하려면 신경을 쓰고 또 써야 했다. 한데 진짜 걱정은 그 다음에 또 생겼다. 어린이들과 나의 나이가 50살이 넘게 차이가 난다. 이 나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고심하다가 뜬눈으로 지샌 것이다.

미식회 당일 어린이들은 힘찬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왔다. 막상 만나 본 어린이들은 의젓했고 밝았다. 24개월 된 어린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새우를 튀겨서 케첩에 조리는 요리를 하면서 풍미를 더하기 위해 조금 넣은 중국의 두반장에는 “좀 매운데요”라면서 아이들이 넣은 양념을 바로 읽어 냈다. 매울까봐 케첩만 넣었더니 “단순한 케첩 맛만 나는데요”라면서 콕 집어냈다. 어린이들은 ‘절대 미각’을 갖고 태어난 듯 보였다. 짜장면을 먹을 때는 오늘 짜장면 먹었다고 광고를 하는 것처럼 온 얼굴이 모두 짜장면으로 물들었다. 볶음밥은 한 그릇 더 달라며 곱빼기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45센티미터 잉어로 만든 탕수생선 앞에서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중 아홉 살짜리 한 어린이는 꿈이 래퍼였다. 함께 노래할까? 무슨 노래를 하고 싶어? 했더니 바로 영국 그룹 퀸의 노래를 불렀다. 아홉 살짜리 어린이가 퀸의 노래를 하다니. 나는 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미니 마이크도 꺼내고 컴퓨터에 꽂아서 쓰는 노래방도 가동했다. 미식회로 시작했는데 음악회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는 노래 하나로 즐거워하며 50년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을 만끽했다.

흥 많은 한국인인 우리는 식사하면서도 노랫가락 한 소절이라도 부르면 더 행복한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었다. 미식회로 시작한 우리들의 시간은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와 함께 막을 내렸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옛날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나도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즐겨 한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할 때 나는 즐겁지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살짝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마다 사용하는 어휘도 달라 간혹 세대 간 대화가 막히기도 한다. 과도하게 줄인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척할 때가 있지만, 무슨 뜻이냐고 물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시중에는 신세대인 밀레니얼과 일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도 나와 있다는데, 진정한 소통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일 아닐까? 오늘 하루도 그렇게 보내 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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