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고-송기동 문화2부장] 인종의 묵죽도
2021년 02월 09일(화) 05:00
“성품이 매우 고요하고 욕심이 적으며 인자하고 공손하며 효성과 우애가 있었으며 학문에 부지런하고 실천이 독실하였으므로 동궁(東宮)에 있은 지 25년 동안에 어진 덕이 널리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은 12대 인종(仁宗, 1515~1545)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성군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인종은 부왕(父王) 중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8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맥동마을 앞 관동천변에는 계란을 반으로 자른 듯한 모양의 난산(卵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문정공(文正公) 하서(河西) 김인후(1510~1560) 선생이 인종의 승하일인 음력 7월 1일에 하루 종일 엎드려 애절하게 통곡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하서는 1543년(중종 38년)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世子侍講院 說書)를 맡아 세자이던 인종과 사제(師弟)의 인연을 맺었다. 그 당시 인종은 비단에 손수 그린 묵죽도(墨竹圖)를 하서에게 하사하면서 그림에 제시(題詩)를 짓도록 했다. 하서는 즉석에서 이렇게 썼다. “뿌리, 가지, 마디, 잎새 모두 다 정미(精微)롭고/ 굳은돌은 벗인 양 주위에 둘러 있네/ 성스러운 우리 임금 조화를 짝하시니/ 천지(天地)랑 함께 뭉쳐 어김이 없으셔라.”(‘하서 김인후 선생 이야기’, 동암 김병효 지음, 2007년 울산김씨 문정공 대종중 펴냄)

인종은 또한 하서에게 성리학자 주희의 문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과 배 3개를 내리기도 했다. 하서는 고향에 배씨를 심었는데 후손들은 이 나무를 ‘임금이 선물로 내려 주신 배’라는 의미의 ‘어사리’(御賜梨)라고 부르며 정성껏 가꿨다. 배나무는 세 번이나 고사될 뻔했으나 다시 살아나 현재 수령 300년의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인종이 스승인 하서에게 하사한 ‘묵죽도’를 새긴 목판이 도난당한 지 15년 만에 장성 필암서원으로 돌아온다. 서원 내 장경각(藏經閣)에 보관하던 중 지난 2006년 도난당했다가 제자리를 찾게 된 묵죽도 목판을 통해, 480여 년 전 군신(君臣) 관계를 뛰어넘어 되살아나는 사제 간의 훈훈한 향기를 느껴 볼 수 있을 것 같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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