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군이 구입한 유물 모두 가짜”
법원 “매도자에 속아 10억 계약…매매대금 줄 필요 없다”
2020년 05월 22일(금) 00:00
고흥군이 유물 매도자에게 속아 10억원을 주고 체결한 매매계약이 취소됐으니 잔금을 줄 필요가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는 현행 민법(제 110조 1항)에 따라 계약 취소가 이뤄졌으니, 고흥군이 유물 매도자가 청구한 매매 대금을 치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법 민사 3부(부장판사 김태현)는 유물 매도자 A씨가 고흥군을 상대로 제기한 ‘매매대금 지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고흥군이 매매대금(10억원)의 일부(1억3000여만원)를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 판결과 달리, 항소심은 고흥군이 A씨 부부에게 속아 체결한 매매계약인 점을 들어 계약을 취소한 만큼 매매대금을 달라는 A씨 요구가 “이유없다”고 판단했다.

A씨 부부는 지난 2015년 11월 ▲윤봉길 의사의 유묵 ▲안중근 의사의 족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시문 ▲김구 선생의 서신 ▲독립운동가 조완구 선생의 서신 ▲독립운동가 조경한 선생의 서첩 등 유물 6점을 고흥군에 10억원에 넘기는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유물을 넘겼다.

고흥군은 같은 달, 매매대금 중 4억원을 지급했지만 진위 논란이 제기되면서 나머지 6억원을 지급하지 않았고 A씨는 나머지 잔금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1심은 “각 유물이 진품이 아니라면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윤봉길 의사 유묵이 진품이 아닌 점을 들어 일부 계약 해제 사유를 반영하고 매매대금 1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흥군이 A씨 등에게 각 유물 출처와 진위 여부 등에 관해 기망(欺罔·속임) 당해 계약이 체결됐다”며 “고흥군이 계약취소를 통보한 것도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미 계약이 취소된 만큼 계약이 유효한 것을 전제로 매매대금을 요구하고 있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흥군은 2015년 개관을 앞둔 덤벙분청문화관의 품격 향상을 위해 국가 보물 지정가치가 충분한 애국지사들 유물을 보존·전시할 목적으로 유물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점을 감안, A씨 등의 기망행위가 없었다면 모조품인 유물을 거액을 지불하고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재판부는 “계약 체결무렵, A씨 부부 등이 갖고 있던 윤봉길 유묵, 안중근 족자, 안창호 시문, 김구 서신, 조경한 서첩은 모두 모조품이었을 뿐 아니라 김구 서신, 조완구 서신, 조경한 서첩은 1000만원 정도에 구입한 것에 불과하고 나머지 서예 작품들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거나 진품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럼에도 A씨 등은 지난 2015년 6월 마치 진품이 확인된 것처럼 고흥군 담당공무원들에게 “전주역사박물관 전시가 끝나면 광주 남구청에 기탁해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받게 하려고 논의중”이라고 거짓말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법원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는 현행 민법(제 110조 1항)을 감안, 해당 매매계약의 경우 고흥군이 취소의사표시가 기재된 재판 준비서면이 A씨 등에게 송달된 시기에 적법하게 취소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고흥군이 속아서 체결된 해당 유물매매계약은 취소됐기 때문에 매매계약이 유효하다며 매매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A씨 주장은 이유없다”고 판시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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