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위로한 유가족들 40년 견뎌온 모진 세월
2020년 05월 18일(월) 19:35
소 판 돈 수금하러왔다 총탄에 스러지고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에 평생 트라우마
고 임은택씨 부인 최정희씨
광주교도소 암매장지서 남편 발견
“3남매 잘 키운거 칭찬해줘요”
그리움 담은 편지 눈물의 낭송
이연 열사 아내 김순희씨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80년 5월 당시 희생된 남편의 사연을 편지형식으로 낭독한 최정희(가운데)씨를 위로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이후 3번째로 찾은 제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5·18 국립묘지에서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유가족들에게는 “더이상 생존자와 유족들의 트라우마가 그 가족, 자녀들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서울에도 트라우마 센터를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남편 향한 그리움, ‘편지’에 담은 최정희씨 위로= “다시 만나는 날 나 너무 늙었다고 모른다 하지말고. 3남매 반듯하게 키우느라 고생했다고 칭찬해해주세요. 참 잘했다고.”

최정희(73)씨는 18일 열린 제 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한 남편 임은택(사망 당시 36세)씨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울먹이며 읽어내려갔다.

최씨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은 낭독이 끝난 뒤 최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고 김정숙 여사도 악수를 하며 다독였다.

최씨의 남편 임씨는 1980년 5월 21일, 저녁을 하고 있던 부인에게 소 판 돈을 수금하러 광주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았다.

최씨는 남편을 찾아 광주 곳곳을 돌아다니다 10일 만인 5월 31일 광주교도소 인근 암매장 시신 발굴 현장에서 맞닥뜨렸다.

최씨는 편지에서 “젊은 나이에 3남매 키우며 살기가 너무 팍팍해서 맥없이 가버린 당신이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서른여섯 나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당신이 불쌍하기만 하다”며 울먹였다.

최씨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 국제시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1978년 남편 고향인 담양 대덕으로 이사해 소를 키우며 오순도순 살다가 5·18을 겪었다.

돌아오겠다던 남편을 암매장지에서 찾은 최씨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울부짖었다. 부검을 위해 조대로 옮겨졌을 당시 임씨는 구두 한 짝과 팬티만 입은 상태였다. 오른쪽 다리·오른쪽 어깨·왼쪽 무릎·옆구리까지 4발의 총상이 있었다. 임씨는 지난1997년 5·18국립민주묘지로 옮겨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 제2묘역에서 고(故) 이연 씨 묘를 참배한 뒤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고인은 전남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0년 5월 27일 YMCA 회관에서 계엄군과 총격전 중 체포되어 전신 구타를 당했다./광주전남 사진기자회
◇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숨진 이연 열사 가족들 위로=문 대통령은 이날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국립 5·18 묘지를 찾아 지난해 7월 숨을 거둔 이연 열사의 유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씨 아내 김순희(55)씨는 “5·18 이후 후유증이 많으셨나”는 문 대통령 물음에 “그곳(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진압작전)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갖고 사셨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은 행복하게 살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했고 지난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죄책감이란 착한 사람이 갖는 것”이라며 위로했다.

국립 5·18민주묘지 2묘역 1-57 묘역에 자리한 이연 열사는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진압작전 당시 YWCA를 사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죽을 각오로 계엄군과 맞섰지만 보유했던 구형 총기의 노리쇠가 고장나면서 계엄군에게 붙잡혔다.

이 열사는 80년 10월 30일 형집행금지명령으로 풀려날 때까지 계엄군에 의해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소 뒤 전남대를 그만 두고 서강대에 재입학한 이씨는 거처를 서울로 옮기면서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으로 5·18과의 연관성을 감추고 살아왔다.

이씨는 그러다 5·18 백일장 대회 등을 계획하고 직접 심사위원까지 맡는 등 열정을 보이며 5·18 관련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이씨는 생전에 아내에게 “상담치유센터를 만들어 그들도 치유하고 우리도 치유하자”며 지난해 부인과 가톨릭대 대학원에 입학, 심리상담을 공부하던 중 세상을 등졌다.

아내 김순희씨는 “남편이 힘들게 버텨준 것도 애쓴 것”이라며 “40주년을 맞은 5·18이 이제는 희망적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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