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섭 해군과학기술학회장·목포해양대 교수]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대응
2019년 09월 24일(화) 04:50
일본 정부의 비이성적 경제 보복 행위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일 양국의 갈등이 이제 안보 영역까지 확장돼 가는 상황이다. 한일 관계가 어느 해 보다 혼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또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어려운 시점에 420여 년 전 임진왜란 기간 중 조선과 일본이 치렀던 해전의 결과와 교훈을 상기해 봄으로써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우리의 대응 자세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임진왜란 기간 중 조선 수군이 치른 해전 중 가장 대조적인 해전은 조선 수군 궤멸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칠천량해전과 궤멸된 조선 수군으로 세계사에 빛나는 불멸의 신화를 창조한 명량해전이다. 칠천량해전은 1597년 음력 7월 남해 칠천량 바다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80여 척의 전선을 갖고도 패배한 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거의 전멸되었고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조선의 바다는 일본 수군의 안방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명량해전은 백의종군 중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받은 이순신이 궤멸된 조선 수군을 수습하여 확보한 13척의 전선으로 울돌목에서 10 대 1로 우세한 일본 수군을 격파한 해전이었다. 불과 칠천량해전 패배 이후 2개월만의 승리로 서남해역의 제해권을 되찾은 불멸의 해전이었다.

180여 척 조선 수군의 전력을 갖고도 치욕적 패배를 한 해전과 불과 13척의 전선으로 극적인 불멸의 승리를 한 해전에는 어떠한 요인이 숨어 있을까. 칠천량해전의 패배 요인은 무리한 공격, 장수의 리더십 부족 및 장수와 병사들의 결전 의지 결여와 도주 등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싸워야 할 주체인 장수와 병사들의 결전 의지 결여와 도주였다.

실제로 해전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전투 중 전의를 상실하고 바다로 뛰어들거나 육지로 도망하였고, 심지어 원균의 장수였던 배설은 휘하 전선 및 병사들과 함께 도주하기도 했다. 이 해전을 두고 당시 군령 체계의 지휘권자인 이원익은 조선 수군은 처음부터 힘을 겨루어 싸우다 패한 것이 아니라 산 자나 죽은 자나 도망하기에 바빴다고 평했다.

명량해전의 경우 해전 전 조선 수군의 전력은 칠천량해전의 패잔병 및 일부 수습된 병사들과 전선 13척에 불과하였다. 오죽했으면 조선 수군이 궤멸되었음을 잘 알고 있는 선조가 “수군을 가지고 바다에서 싸울 수 없으면 육지로 올라와 육군과 같이 싸우라” 고 이순신 장군에게 명령을 내렸을까. 이에 대해 이순신 장군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아직도 싸울 수 있습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라는 보고를 하고 명량수로에서 결전에 임하였고, 적보다 턱없이 열세한 전선과 병력으로 전투에 임하여 승리를 했다. 이 두 해전 승패의 결정적 요인은 ‘왜 싸워야 하는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등 해전에 임하는 장수와 병사들의 결전 의지였다.

세계화 시대에 정상적인 국제 관계는 신뢰와 상호 존중 가운데 이루어진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신뢰와 상호 존중이라는 기본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불행했던 과거사를 안고 있는 한일 관계는 더욱 신중해야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의 조치는 정상적인 국제 관계의 한계를 넘어 경제 전면전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지금은 한일 양국 간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거울삼아 우리의 단합된 대응 의지를 우선적으로 보여 줄 때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이순신 장군이 말한 것처럼 상대는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며, 이러한 학습 효과는 더 어려운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 420여 년 전 명량해전과 칠천량해전에서 일본 수군에 맞서 싸웠던 조선 수군이 보여준 대조적인 결전 의지의 결과가 남긴 교훈은 여전히 현재도 유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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