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 세상만사] 나는 보았다! 그녀의 민낯을
2019년 03월 21일(목) 19:45
한때는 이 여자 참 맘에 들었었다. 얼굴이 예뻐서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뭐 그런 이유도 없진 않았겠지.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일찍이 가수 남진이 말하지 않았나.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그녀는 곱상한 생김새마냥 마음도 퍽 고울 것이라 짐작했었다.

그런 짐작은 감춰졌던 그녀의 비밀이 알려지면서 점차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녀에게는 장애인 딸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걱정거리 하나쯤 갖고 있기 마련이라더니. 그 곱디고운 얼굴에도 어쩐지 엷은 그늘이 있는 것 같더라니. 연민이 더해지면 사랑도 깊어지는 것일까. 그녀가 좋아졌다.

정치에 입문한 계기도 남달랐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다. 딸의 장애 사실을 말하자 학교 관계자가 그러더란다. “장애인을 교육시킨다고 일반 아이처럼 되는 줄 아십니까?”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모욕이었다”고 했다. 그래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보다, 전체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잘나가던 판사를 그만두고 험난한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다. 아이 엄마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것은 막말인가 망언인가

그랬던 그녀가 최근 들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우선 ‘5·18 망언’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선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으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하지만 ‘5·18 북한군 투입’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가짜 뉴스다. 가짜는 가짜일 뿐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없다. 그녀에 대한 첫 번째 실망은 이렇게 다가왔다.

그런데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언제부터 ‘태극기 부대 대변인’이 되었느냐”는 힐난((詰難)을 들어야 했던 그녀. 그녀가 지난주 다시 입을 여니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 외신을 인용한 발언이긴 했으나 파장은 컸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이 같은 발언을 무조건 ‘막말’이라고 우기고 싶지는 않다. 조금 과하긴 했으나 하나의 비유로 너그럽게 봐 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물론 여당으로서는 매우 기분이 나쁘겠지만 야당에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사이다 발언’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기발한 비유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힘을 갖는다. 가령 최근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어떤 이는 지난 2016년 민주당을 이끌던 김종인 대표를 향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씹다 버린 껌’이라 했다. 이 또한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사태의 정곡을 정확히 찌르는 얼마나 통쾌한 발언일 것인가. 때론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소 아쉬운 점은 있으되, 아직 그녀에 대해 절망하기는 이른 것 같다.

오히려 매우 실망스러운 것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 이후 여당이 보인 반응이다.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30여 년 전(1988년)에 폐지된 ‘국가 모독죄’를 들고 나온 것이다. 여당 대표 또한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가 흔히 ‘국가원수 모독죄’로 잘못 알고 있는 바로 그 죄목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왜 그렇게 잘못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짐(朕)이 곧 국가’이던 그 암울했던 독재 시절을 우리가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 대통령을 비판했던 수많은 인사들이 원수(元首) 아닌 원수(怨讐)를 모독했건만 ‘원수 모독죄’의 올가미에 걸려 잡혀 가곤 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어 보자. 시인 양성우(76)의 경우다. 70년대 광주 중앙여고 국어교사였던 그는 당시 시민들을 노예에 빗대(장편시 ‘노예 수첩’) 박정희 정부를 비판했다. 박 정권은 그를 국가모독죄와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 기소했다. 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한데 하필이면 과거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던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 국가원수모독죄란 말인가. 정녕 욕하면서 닮아가는 것이 정치권의 생리인 것인가. 그녀의 말이 아무리 도를 넘어섰다 해도, 과거 악법까지 들먹이며 칼을 뽑아 든 여당의 모습은 보기에 썩 좋지 못했다. 진정 여당답게 보다 어른스러울 수는 없었던 것일까.

문득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일화가 떠오른다. 어느 날 그는 잡지를 이리저리 들척이다가 자신을 ‘알코올 중독자’로 쓴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근거 없는 날조 기사에 분노한 대통령은 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윽고 판결이 내려졌다. “귀 잡지사 기사는 허위로 판명된 바, 대통령에게 손해 배상을 하시오. 손해 배상금은 1달러입니다.” 재판 결과를 들은 비서관이 묻는다. “각하, 왜 고작 1달러만 청구한 것입니까?” 이에 대통령이 답한다. “중요한 것은 진실일세. 나에겐 손해 배상금은 의미가 없네. 이제 다 밝혀졌으니 만족하네.”

진짜 국론 분열 주범 누군데

다시 그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막말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지지층 결집에 성공한 그녀가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도 있다. 때마침 제1야당에 대한 지지율도 올랐다. 순전히 여당의 헛발질 덕분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봐 줄 만했다. 그런데 아뿔싸, 끝내 그녀의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다.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말. 이 발언으로 그녀는 겁결에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반민특위는 1948년 8월 헌법에 따라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조사·처벌하기 위해 설치됐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대로, 일제에 국권을 넘기고 독립운동가를 고문·박해한 친일파 처단은 당시 시대적 과제였다. 그런데 친일 세력과 결탁한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1년 만에 와해시켜 버렸다. 그러니 보라.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킨 게 아니라 이승만과 친일파가 바로 국론 분열의 주범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참을 수 없는’ 천박한 역사 인식이란! 올해는 3·1만세 운동과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 그래 더욱 선조들을 대할 면목이 없다. 뜬금없이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제1야당 대표의 망언이라니. 지하에 있는 친일파들이 기뻐서 무덤 밖으로 뛰쳐나올 만한 얘기 아닌가. 독립운동가들의 대성통곡(大聲痛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녀가 이런 여자였음을 예전엔 왜 몰랐던고. 실망을 넘어 절망감이 몰려온다. 이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차갑게 거둬들여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살면서 한때 좋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멀어지는 것도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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