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주의 유럽 예술기행] <7> 이탈리아-친퀘테레·시에나
친퀘테레에서 몬탈레의 시 ‘지중해’를 읊조리다
박해 피해 지중해 건너 온 기독교인들의 산비탈 ‘다섯마을’ 친퀘테레
노벨문학상 몬탈레 시인이 머무른 집에서 “옛 친구여 나는 취했다오”
고풍스런 대성당·캄포광장의 시에나에서 이태리 여행을 끝냈다오
2018년 11월 22일(목) 00:00

박해받은 기독교도들이 절벽에 마을을 이룬 친퀘테레.

캄포광장 옆에 있는 전망대 같은 만자탑과 시청.








친퀘테레는 ‘다섯 마을’이란 뜻이다.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서 지중해를 건너온 기독교인들이 산비탈에 새집처럼 마을을 이뤄낸 곳이다. 다섯 마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나롤라를 가기로 하고 나와 아내는 구스터 씨를 따라서 숙소를 나선다. 이탈리아도 완행열차는 티를 낸다. 20분이나 연착을 한다.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검표기에 열차표를 한 번 넣고 난 뒤 승차한다. 완행열차 안은 떠드는 사람들로 시끄럽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기질이 비슷하다. 열차 속도는 그래도 빠른 편이다. 잠시 후 열차 안이 조용해진다. 앞자리의 팔에 문신을 한 꽁지머리의 청년들이 내렸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대리석 채석장이 보이는 마르니(Forte dei Marmi)역을 지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대리석을 캐왔다고 하니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도 이곳의 석재를 이용해 조각했을 듯하다.

나와 아내는 열차를 바꿔 타려고 스페지아(La Spezia)역에 재빨리 내린다. 친퀘테레로 가는 열차가 역에 정차해 있는 것이다. 친퀘테레가 관광지로 탈바꿈해서인지 여행객들이 우르르 환승하고 있다. 구스터 씨가 친절하게 설명한다.

“스페지아역에 내려서 걸어가면 바다가 나와요. 거기 선착장에서는 친퀘테레를 오가는 여객선이 있지요. 또 선착장 부근에는 ‘만조니 길’도 있어요. 알랙산드로 만조니는 이태리의 소설가로 1840년에 발표된 ‘약혼자들’은 단테 신곡에 비견되는 작품으로 평가하지요.”

만조니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듣기만 한다. 구스터 씨는 만조니의 ‘약혼자들’을 읽었던 모양이다.

“이탈리아의 정통 문학가인데 이태리 순수문학, 고전문학의 거장이라고 하지요. 특히 ‘약혼자들’은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모두 읽었다고 할 만큼 유명한 작품이지요. 저도 청소년 때 17살에 읽었는데, 소설세계를 이해하기 힘들어서 작품 속으로 빠져들기는 어려웠습니다.”

구스터 씨는 청소년기에 스위스 김나지움을 다녔는데, 그곳을 졸업하려면 유럽의 명작들은 다 읽어야만 했다고 덧붙인다. 말하자면 김나지움을 졸업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난해했던 ‘약혼자들’을 읽었다는 것이다. 마나롤라역은 친퀘테레의 두 번째 마을에 있는 역이다. 역은 해변 절벽 위에 있다. 나와 아내는 친절한 구스터 씨를 따라서 비탈길을 따라 마을로 올라간다. 일단 교회를 보고 싶어서다. 척박했던 산기슭을 다랑이 밭으로 일군 이곳 주민들의 땀과 눈물이 교회에 배어 있을 것 같아서다. 교회 마당에 서니 다랑이 밭과 바다가 한 눈에 든다. 소박한 교회지만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말이 떠오른다. 이주민들이 눈물로 피운 꽃 같다. 종탑에 매달린 청동 종을 보니 고난의 때를 잊지 말자는 무거운 약속이 어려 있는 듯하다. 바다로 나가는 비탈길 양쪽에 절벽 같은 산을 개척하는 이주민의 모습들이 흑백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친퀘테레에 와서 참으로 봐야 할 것은 이곳에 전시된 흑백사진들이 아닐까 싶다. 비좁은 해변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자 망자들을 풍장(風葬)한 언덕이 나타난다. 완도에서 보았던 모습과 흡사하다. 망자를 매장할 땅이 부족한 험지의 이주민들이 만들어낸 장례문화이리라. 골목들이 미로처럼 나 있다. 무작정 골목길을 오르니 또 다시 절벽 아래로 펼쳐진 바다가 보인다. 마을의 한 대문에 낯익은 이름이 쓰인 문패가 보인다. 발견이라고 해야 옳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몬탈레 시인이 이 집에 머물렀네!”

에우제니오 몬탈레(E. Montale)는 197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대표적인 시인. 내가 소리쳤던 것은 민음사에서 출간한 그의 시집 ‘오징어 뼈’를 읽고 몹시 감동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집필실로 사용했던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쓸쓸하게 방치돼 있다는 느낌이다. 몬탈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그가 머물렀던 모든 곳들이 떠들썩했으리라. 나는 시인의 영혼을 위로하듯 친퀘테레에서 영감을 얻었던 것 같은 그의 시 ‘지중해’를 두런거리며 외워본다.

“옛 친구여 나는 취했다오/ 푸른 종(鍾) 같은 그대의 입술에서/ 열렸다 다시 오므라져/ 터져 나오는 소리에/ 흘러간 여름마다 살던 내 집이/ 그래, 그래, 그대 가까이 있소/ 태양이 작열하고/ 모기가 하늘에 구름 이루는 곳에/ 바다여, 그때처럼 오늘도/ 그대 앞에 무감각해지는 나/ 나 어찌 받을 수가 있을지/ 그대 호흡이 주는 숭고한 충고를/ 내 마음의 미세한 고동일랑/ 한 순간의 그대 숨결에 그친다고/ 준엄한 그대 율법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니/ 폭넓고 다양하고 견고하게 하라며/ 그대가 심연에 있는 온갖 쓰레기를/ 바닷가 불가사리, 코르크 조각, 해초 속으로/ 내리치듯 나 역시 모든 불결 씻어버리라고/ 그대가 맨 처음 나에게 일러주었소.”

무리인 줄 알지만 우리의 두 번째 행선지는 시에나(Siena). 이제 이탈리아 여행을 일단 접고 내일이면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빈에서 나와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교포 분이 있어서이다. 피렌체를 갈 때 구스터 씨로부터 시에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지만 낯선 기분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시에나를 가는 동안 이탈리아 여행서를 펼쳐본다.

‘피렌체의 남쪽 약 50km 지점, 옴브로네강의 지류 사이에 끼어 있는 해발고도 320m의 구릉에 위치해 있다. 키안티 산지는 포도주 생산으로 이름이 높다. 교황세력, 에스파냐 세력이 시에나의 지배권을 놓고 서로 경쟁했다. 1559년 이후에는 토스카나 공국(公國)이 되었다. 시에나의 르네상스는 14세기가 전성기였으며, 회화는 14세기 전반에 피렌체파를 의식한 시에나파가 성립되었다. 근대도시로서의 발전은 더디었으므로 고풍스런 건물들이 많다. 피렌체 대성당과 경쟁했던 시에나 대성당, 팔리오(경마경주축제)가 열리는 캄포광장, 만자 탑(塔)이 있는 현재의 시청건물이 있다.’

시에나로 가는 열차로 환승하고 난 뒤 한숨 자고 났더니 열차는 넓은 목초지를 지나고 있다. 끝도 없는 목초지에 숲이 듬성듬성 형성돼 있다. 동물들이 살 수 있도록 숲 조성을 법제화했다니 부럽다. 어느 새 열차가 산간지방을 달리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원도 대관령 같은 곳이다. 시에나역은 협곡에 위치해 있다.

시에나역에 내리니 하늘이 친퀘테레 바다처럼 파랗다. 진녹색 나뭇잎 사이로 멀리 고성이 보이고 교회 종탑이 우뚝하다. 역에서 시가지로 빨리 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우리나라 백화점으로 치자면 10층 정도는 오른 듯하다. 특이한 지형에 형성된 도시다. 개선문 같은 성문을 지나니 시에나의 중심지가 나온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역사지구이다. 길은 여행자들이 넘쳐나서 비좁다.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시에나의 소설가 페데리고 토찌(Federigo Tozzi)가 살았던 건물이 보인다. 작은 광장 보도블럭에 그림을 그리는 길거리 화가가 있다. 일러스트를 하는 작은딸이 생각나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드디어 시에나의 중심인 13세기에 조성했다는 캄포광장으로 들어선다. 광장은 조개껍질 모양인데 14세기부터 매년 팔리오가 열리는 곳이란다. 경마경주는 14세기 전통의상을 입은 각 지방의 대표선수들이 자기 고장의 깃발을 들고 행진한 뒤, 안장 없는 말을 타고 경쟁하는데 낙마하여 죽을 수도 있는 매우 격렬한 경기란다. 시에나 사람들의 거친 기질이 반영된 경기가 아닐까 싶다. 흑사병 퇴치를 위해 전망대처럼 높이 지었다는 만자 탑을 본 뒤 아내는 행상에게 도예 작업할 때 필요할 것 같다며 앞치마를 산다. 다시 구스터 씨를 따라서 산타마리아 대성당으로 서둘러 가본다. 구입한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 성당 내부 전체가 보물이다. 사자가 조각된 설교단과 흑백의 대리석으로 모자이크한 문양 및 성경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한쪽 방인 피콜로미니 박물관에는 헨델이 작성한 악보도 있다.

대성당은 12세기에 공사를 시작해서 14세기 중반에 완공했다고 한다. 200년 만에 완성한 건축물이다. 돈조반니 피사노의 조각은 어디를 가나 그 도시의 문화상징이 되고 있으니 진부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을 길다’라는 말을 거듭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성당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역사평론가이자 소설가 그리고 시인이었던. 체사레 브랜디(Cesre Brandi)의 집을 스친다. 시에나에서 태어나 여기서 죽었다고 하니 향토작가인 셈이다. 다시 캄포광장을 지나 열차를 타러 잰걸음을 한다. 열차는 올 때보다 더 작은 2량짜리이다. 5시 38분 출발인데 또 연착이다. /글·사진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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