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길 남부대 초등특수교육과 교수] 이제는 교육의 질이다
2017년 09월 08일(금) 00:00 가가
21세기의 교육은 어떤 패러다임이 필요할까?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다가올 미래는 정보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이미 40여년 전에 예측했다. 그가 유명하게 된 것은 예측대로 그러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생전에 어떤 강연에서 앞으로는 어떤 세상이 될 것이냐는 방청객의 질문에 그는 앞으로는 ‘예측불가능의 시대’라는 말을 남겼다.
어떤 상황을 예측할 수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은 불안을 가진다. 우리 모두는 언제나 이러한 불안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 미래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설계하고, 목표를 가지고, ‘나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행복을 생각한다. 미래의 행복한 ‘삶’을 생각하며 ‘교육’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교육’이 ‘예측 불가능한 시대’의 답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은 그러한 질문들에 답을 줄 수 있을 만큼 교육적 만족을 주고는 있을까? 어떤 교육이 미래에도 잘 적응 가능한 인재를 키울 수 있을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육의 패러다임도 몇 번 바뀌었다. 기능주의 시대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물건이 최고로 인정받았고, 교육도 행동주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구성주의 시대에는 소량 생산, 핸드메이드 제품이 인정을 받았고, 교육도 인본주의 관점으로 변화가 있었다. 행동이 바뀌면 생각이 변한다는 사고에서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변한다는 시대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동하였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관점이 보상과 체벌로 가능하다는 것에서 개인의 내적 동기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으로 변화되었다.
지금은 개인의 ‘못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이 아닌 ‘더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의 질로 관심을 바꾸어야 할 때인 것이다. 교육의 질이란? 혹은 질적인 교육이란? 교육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교육에서 만족도를 높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한 개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개인이 ‘원하는’ 교육을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에서 만족을 얻는다.
한 개인이 ‘원하는 교육’은 맞춤형 교육이고, 이러한 교육적 관점은 이미 진행형이다. 다만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대한 논의와 학교 교육에서 ‘모두’를 위한 질적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 여러 가지 교육적 대안은 필수이다.
특수교육에서는 교육 대상자들의 질적인 교육을 위해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다. 개별화 교육을 위해서 법적 학급당 학생수가 유치원은 4명, 초등학교 6명, 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으로 정해져 있다. 이러한 법적 노력은 특수교육대상자 한 명 한 명이 ‘원하는’ 교육을 위한 것이다.
특수교육대상자들은 장애유형이 같고, 장애정도가 같아도 각 개인의 독특한 교육적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학급당 학생수가 일반 학생들에 비해 적다. 그러나 지금은 장애 정도가 중도·중복화되는 경향이 많아지면서 학급당 학생수를 더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하면 특수교육 대상자들이 지금보다 더 잘 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할 때 행복감도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수교육대상자 개인이 가진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늘 진리 같고 당연한 것 같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자의 실천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교육에서도 교육의 대상을 위한 만족도를 생각한다면, 피교육자의 욕구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의 내용이라면 결과도 분명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우리 후세대들에게 혹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교육도 자산이다. 교육의 틀이 튼튼해야 혼란스럽지 않게 배울 것이고, 그 교육의 효과가 오래갈 것이다. 인본주의가 바탕이 되고 인성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의 프레임이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불안이 해소되면서 행복을 느낀다. 교육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진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육의 패러다임도 몇 번 바뀌었다. 기능주의 시대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물건이 최고로 인정받았고, 교육도 행동주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구성주의 시대에는 소량 생산, 핸드메이드 제품이 인정을 받았고, 교육도 인본주의 관점으로 변화가 있었다. 행동이 바뀌면 생각이 변한다는 사고에서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변한다는 시대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동하였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관점이 보상과 체벌로 가능하다는 것에서 개인의 내적 동기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관점으로 변화되었다.
한 개인이 ‘원하는 교육’은 맞춤형 교육이고, 이러한 교육적 관점은 이미 진행형이다. 다만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대한 논의와 학교 교육에서 ‘모두’를 위한 질적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수 감축 등 여러 가지 교육적 대안은 필수이다.
특수교육에서는 교육 대상자들의 질적인 교육을 위해 개별화 교육을 실시하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다. 개별화 교육을 위해서 법적 학급당 학생수가 유치원은 4명, 초등학교 6명, 중학교 6명, 고등학교 7명으로 정해져 있다. 이러한 법적 노력은 특수교육대상자 한 명 한 명이 ‘원하는’ 교육을 위한 것이다.
특수교육대상자들은 장애유형이 같고, 장애정도가 같아도 각 개인의 독특한 교육적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학급당 학생수가 일반 학생들에 비해 적다. 그러나 지금은 장애 정도가 중도·중복화되는 경향이 많아지면서 학급당 학생수를 더 감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하면 특수교육 대상자들이 지금보다 더 잘 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할 때 행복감도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수교육대상자 개인이 가진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생태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늘 진리 같고 당연한 것 같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자의 실천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교육에서도 교육의 대상을 위한 만족도를 생각한다면, 피교육자의 욕구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의 내용이라면 결과도 분명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우리 후세대들에게 혹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 교육도 자산이다. 교육의 틀이 튼튼해야 혼란스럽지 않게 배울 것이고, 그 교육의 효과가 오래갈 것이다. 인본주의가 바탕이 되고 인성을 중요시 여기는 교육의 프레임이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불안이 해소되면서 행복을 느낀다. 교육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