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시간속을 걷다] <4> 1930년 보성 명봉역
2017년 03월 02일(목) 00:00 가가
영·호남 소통의 간이역, 관광으로 제2의 부흥 꿈꾼다


보성 명봉역은 87년전인 1930년 12월 25일 영업을 개시했다. 1960년대에는 연간 승객 50여만명, 화물 4000여t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렇지만 현재는 이용자가 급감해 ‘명예 역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년 4월이면 벚꽃이 만개해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변신한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곽재구, ‘사평역’ 중)
어릴 적, 기차여행은 설렘이었다. 초등 6학년 수학여행을 떠날 때, 아마도 태어난 후 가장 긴 시간 동안 완행열차를 탔을 터이다. 한 친구는 역을 지나칠 때마다 역명을 노트에 또박또박 적기도 했다. 명절 때는 어렵사리 표를 구해 복잡한 와중에도 덜컹대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고향을 찾았다. 그래서 시속 300㎞ 이상으로 질주하는 요즘 고속열차 세상에도 어린 시절 경험한 완행 기차와 자그마한 간이역은 따뜻한 그리움이나 아련한 향수로 남아있다.
봄날, ‘경전선’(慶全線) 보성 명봉역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명봉역이 첫 영업을 시작한 때는 87년 전인 1930년 12월 25일이었다.
◇87년 전 첫 기적 울린 경전선=철도는 식민지 조선,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병력수송과 물자수탈을 위해 철로부설을 서둘렀다. 인천∼노량진을 잇는 ‘경인선’(1899년)을 시작으로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6년), 군산선(1912년), 호남선(1914년), 전라선(1937년) 구간이 차례로 개통됐다.
전라도를 가로질러 남해안을 따라 경상도와 연결되는 노선도 착공됐다. 1922년 송정리∼광주 구간 완공에 이어 광주∼보성∼여수를 잇는 ‘광려선’(송려선) 구간이 1930년 개통됐다. 광양과 진주를 경유해 경남 삼랑진까지 이어지는 277.7㎞ 길이의 ‘경전선’이 최종 완성된 때는 1968년 2월이었다.
명봉(鳴鳳)이라는 지명은 명봉천을 사이에 두고 ‘숫봉황’(봉화촌 뒷산 마을)과 ‘암봉황’(봉동마을 뒷산)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풍수지리적 형상이라 해서 이름붙여졌다.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에 위치한 명봉역은 현재 무인역(무배치 간이역)이다. 이용객이 급감하자 2008년 6월, 역무원을 철수시켰다. 대신 보성역에서 관리를 한다. 또한 2014년부터 철도 전문 사진작가인 김동민 씨를 명봉역 ‘명예 역장’으로 위촉했다. 순천에서 거주하는 명예역장은 틈틈이 무궁화호를 타고 명봉역을 찾아 역사를 관리하고,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해바라기꽃이 일부러 찾아온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에게 안복(眼福)을 안겨주는 곳이다.
역 주변은 7그루의 고목 벚나무가 서있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도시락들 싸들고 와서 나무 그늘에서 봄날 여흥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역사 오른쪽에 세워진 ‘교통보국’(交通報國) 석비와 옛 신호등이 이채롭다. 역무원실에는 나무를 때는 화목 난로도 놓여있다. 역사 내 벽에는 열차 시간표가 붙어있다. 명봉역에서 서광주역까지는 1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지난 2003년 방영돼 인기를 끌은 드라마 ‘여름향기’ 스틸사진과 함께 명예역장이 촬영한 다양한 철도사진으로 꾸며진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방명록에 소감을 적거나 방문기념 스탬프를 떼어 갈 수도 있다. 한 젊은 부부는 방명록에 “내년에는 뱃속이 아닌 같이 손잡고 다시 오자꾸나!”라는 글을 남겼다.
지난 2월 28일부터는 지역민의 편의를 위해 명봉역 무궁화호 정차 회수가 늘었다. 열차시간 개정으로 본래 5차례에서 2차례가 추가됐다. 승차권은 차내 발권이나 또는 보성역에서 예매해야한다.
새로 뚫린 국도 29호선을 달리다 보면 명봉역을 놓치기 쉽다. 예재터널을 지나 신기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옛 도로를 타야만 명봉역을 찾을 수 있다.
현 역사는 60여 년 된 건물이다. 1949년 10월 여순사건 때 옛 역사가 방화 소실된데 이어 이듬해인 1950년 10월에 다시 불타 물품창고에서 임시로 업무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불타 없어진 역사를 붉은 벽돌 건물로 다시 지어 완공한 때는 1958년 11월 5일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명봉역사의 철도사적 가치를 인정해 2013년 ‘준(準) 철도문화재(기념물)’로 지정했다.
명봉역은 1930년 12월 25일에 남조선 철도주식회사에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해 조선총독부 철도국(1936년 3월 1일)→미 군정청(1945년 8월 10일)→대한민국 정부(1948년 8월 10일)로 이관됐다. 명봉역 ‘역사’(驛史)에 따르면 1950년 연간 이용자와 화물량은 852명과 548t 이었으나, 10년 후인 1961년에는 여객 49만9406명, 화물 3965t으로 급증했다. 인근에 석탄을 캐는 탄광이 있었고, 규사를 실었기 때문이었다.
역 근무자 역시 이용자가 많던 1989년 무렵에는 역장과 부역장 각 1명, 운전원 2명, 역무원 4명 등 8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광주역이 폐역되고 탄광마저 폐광되면서 이용자와 화물량이 급감하자 2008년 6월, 명봉역도 무인역으로 바뀌었다.
◇관광자원화해서 ‘르네상스 시대’ 희망=보성역 로컬관제원 정규상 과장은 명봉역을 ‘정(情)이 있는 역’으로 기억했다.
“1990년대 명봉역에서 1년여간 근무했다. 할머니들이 산나물, 해산물을 담은 함지박을 7∼10개씩 들고 아침 6시 10분께 열차를 타고 남광주역으로 팔러 가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라마 ‘여름향기’ 방영후 국내와 일본 등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오기도 했다. 드라마상에서는 역에서 나오면 곧장 녹차 밭으로 갈 수 있는 걸로 설정돼 여행객들에게 혼란을 주었다고 한다. 명봉역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보성군 투어 버스를 이용해 보성 녹차밭 등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만끽하고 다시 보성역이나 명봉역에서 열차를 타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보성역 내에도 1922년에 세운 급수탑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코레일 전남본부는 경전선 명봉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테마역으로 꾸며 지역관광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고 한다. 명봉역 사계를 담은 엽서를 만들어 여행자들이 추억과 사연을 명봉역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박재남 보성역장은 “87년 된 구불구불한 철길을 달리는 경전선은 옛날 기분이 그대로 나요. 머지않아 송정리∼순천 구간이 직선으로 개량화됩니다. 곡성군 사례처럼 지자체에서 폐선구간 등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방안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김동민 명예역장 역시 명봉역 역시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역으로 활성화되길 바란다. 전국 철도역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간이역들이 다들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잖아요. 명봉역을 관광자원화해서 다시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명봉역앞에 꾸며진 공원에는 보성출신 문정희(70) 시인의 ‘명봉역’ 시비가 서있다.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하겠지/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눈앞에 빙판길/ 미리 알고/ 봉황새 울어주던 그날/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눈 시리게 서있겠지.”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어릴 적, 기차여행은 설렘이었다. 초등 6학년 수학여행을 떠날 때, 아마도 태어난 후 가장 긴 시간 동안 완행열차를 탔을 터이다. 한 친구는 역을 지나칠 때마다 역명을 노트에 또박또박 적기도 했다. 명절 때는 어렵사리 표를 구해 복잡한 와중에도 덜컹대는 기차에 몸을 맡기고 고향을 찾았다. 그래서 시속 300㎞ 이상으로 질주하는 요즘 고속열차 세상에도 어린 시절 경험한 완행 기차와 자그마한 간이역은 따뜻한 그리움이나 아련한 향수로 남아있다.
명봉(鳴鳳)이라는 지명은 명봉천을 사이에 두고 ‘숫봉황’(봉화촌 뒷산 마을)과 ‘암봉황’(봉동마을 뒷산)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풍수지리적 형상이라 해서 이름붙여졌다. 보성군 노동면 명봉리에 위치한 명봉역은 현재 무인역(무배치 간이역)이다. 이용객이 급감하자 2008년 6월, 역무원을 철수시켰다. 대신 보성역에서 관리를 한다. 또한 2014년부터 철도 전문 사진작가인 김동민 씨를 명봉역 ‘명예 역장’으로 위촉했다. 순천에서 거주하는 명예역장은 틈틈이 무궁화호를 타고 명봉역을 찾아 역사를 관리하고,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해바라기꽃이 일부러 찾아온 사진작가와 관광객들에게 안복(眼福)을 안겨주는 곳이다.
역 주변은 7그루의 고목 벚나무가 서있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도시락들 싸들고 와서 나무 그늘에서 봄날 여흥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역사 오른쪽에 세워진 ‘교통보국’(交通報國) 석비와 옛 신호등이 이채롭다. 역무원실에는 나무를 때는 화목 난로도 놓여있다. 역사 내 벽에는 열차 시간표가 붙어있다. 명봉역에서 서광주역까지는 1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지난 2003년 방영돼 인기를 끌은 드라마 ‘여름향기’ 스틸사진과 함께 명예역장이 촬영한 다양한 철도사진으로 꾸며진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방명록에 소감을 적거나 방문기념 스탬프를 떼어 갈 수도 있다. 한 젊은 부부는 방명록에 “내년에는 뱃속이 아닌 같이 손잡고 다시 오자꾸나!”라는 글을 남겼다.
지난 2월 28일부터는 지역민의 편의를 위해 명봉역 무궁화호 정차 회수가 늘었다. 열차시간 개정으로 본래 5차례에서 2차례가 추가됐다. 승차권은 차내 발권이나 또는 보성역에서 예매해야한다.
새로 뚫린 국도 29호선을 달리다 보면 명봉역을 놓치기 쉽다. 예재터널을 지나 신기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옛 도로를 타야만 명봉역을 찾을 수 있다.
현 역사는 60여 년 된 건물이다. 1949년 10월 여순사건 때 옛 역사가 방화 소실된데 이어 이듬해인 1950년 10월에 다시 불타 물품창고에서 임시로 업무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불타 없어진 역사를 붉은 벽돌 건물로 다시 지어 완공한 때는 1958년 11월 5일이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명봉역사의 철도사적 가치를 인정해 2013년 ‘준(準) 철도문화재(기념물)’로 지정했다.
명봉역은 1930년 12월 25일에 남조선 철도주식회사에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해 조선총독부 철도국(1936년 3월 1일)→미 군정청(1945년 8월 10일)→대한민국 정부(1948년 8월 10일)로 이관됐다. 명봉역 ‘역사’(驛史)에 따르면 1950년 연간 이용자와 화물량은 852명과 548t 이었으나, 10년 후인 1961년에는 여객 49만9406명, 화물 3965t으로 급증했다. 인근에 석탄을 캐는 탄광이 있었고, 규사를 실었기 때문이었다.
역 근무자 역시 이용자가 많던 1989년 무렵에는 역장과 부역장 각 1명, 운전원 2명, 역무원 4명 등 8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광주역이 폐역되고 탄광마저 폐광되면서 이용자와 화물량이 급감하자 2008년 6월, 명봉역도 무인역으로 바뀌었다.
◇관광자원화해서 ‘르네상스 시대’ 희망=보성역 로컬관제원 정규상 과장은 명봉역을 ‘정(情)이 있는 역’으로 기억했다.
“1990년대 명봉역에서 1년여간 근무했다. 할머니들이 산나물, 해산물을 담은 함지박을 7∼10개씩 들고 아침 6시 10분께 열차를 타고 남광주역으로 팔러 가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드라마 ‘여름향기’ 방영후 국내와 일본 등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오기도 했다. 드라마상에서는 역에서 나오면 곧장 녹차 밭으로 갈 수 있는 걸로 설정돼 여행객들에게 혼란을 주었다고 한다. 명봉역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보성군 투어 버스를 이용해 보성 녹차밭 등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만끽하고 다시 보성역이나 명봉역에서 열차를 타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보성역 내에도 1922년에 세운 급수탑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코레일 전남본부는 경전선 명봉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테마역으로 꾸며 지역관광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고 한다. 명봉역 사계를 담은 엽서를 만들어 여행자들이 추억과 사연을 명봉역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박재남 보성역장은 “87년 된 구불구불한 철길을 달리는 경전선은 옛날 기분이 그대로 나요. 머지않아 송정리∼순천 구간이 직선으로 개량화됩니다. 곡성군 사례처럼 지자체에서 폐선구간 등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방안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김동민 명예역장 역시 명봉역 역시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역으로 활성화되길 바란다. 전국 철도역 역사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간이역들이 다들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잖아요. 명봉역을 관광자원화해서 다시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명봉역앞에 꾸며진 공원에는 보성출신 문정희(70) 시인의 ‘명봉역’ 시비가 서있다.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하겠지/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눈앞에 빙판길/ 미리 알고/ 봉황새 울어주던 그날/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눈 시리게 서있겠지.”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