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밝힌노래]<3> 명동성당과 '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 타는 목마름으로 가득했던 ‘민주화 성전’
2016년 06월 20일(월) 00:00

1987년 6월 전국 방방곡곡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메아리쳤다. 그 시작은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명동성당은 ‘세상의 일’들과는 거리를 두는 듯해 안타깝다.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선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2016년 6월17일 오후 6시 서울 명동거리에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명동성당에서 울린 종소리다. 독실한 신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요히 기도를 하고, 미사에 늦은 이들은 황급히 뛴다. 하지만 명동의 거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멋진 건물 사이로 젊은이들은 소란스럽고 부산하다. 수 많은 인파가 넘실대는 명동의 거리는 우리말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린다.

그리고 드는 생각 ‘군중 속의 고독’. ‘오늘’을 말하는 ‘소리’가 없다. 있을 법한 ‘세월호’도 ‘위안부’도 없다.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에서 든 안타까움이다.

누가 뭐래도 명동의 상징은 ‘명동성당’이다. 이 곳은 가톨릭 첫 순교자인 김범우의 집터로, 가톨릭 성지다. 더불어 민주화의 성지다.

이 곳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1974년)됐고, 유신독재에 항거한 ‘민주구국선언’이 발표(1976년)됐다. 1987년 5·18광주항쟁 추모미사에서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조작을 폭로, 6월항쟁의 ‘태풍의 눈’이 됐다.

1987년 6월10일. 신세계 앞 로터리와 퇴계로, 명동 주변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던 학생·시민·노동자 등 800여명이 명동성당으로 집결했다. 아니 전경들에 밀려 조금씩 조금씩 몰려들었다. 그 수가 1000명에 달했다. 성당 주변은 전경들이 에워쌌다. 그들은 고립됐고, 불가피한 농성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성당 밖에서는 격렬한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줄탁동시’(口卒啄同時·어미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일). ‘안’과 ‘밖’의 ‘호응’이었다. 6월15일 오전 11시 해산하기까지 ‘세계의 눈’은 명동성당을 주시했다.

하지만 지금은 격동의 현장을 말해 줄 수 있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명동성당 바로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향린교회’에는 흔적이 오롯하다. 명동성당에서 YWCA 옆 골목으로 100m쯤 내려가면 ‘향린교회’가 나온다.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고층빌딩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지만 향린교회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향기 나는 이웃이 되겠다’는 목표로 세워진 이 교회가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탄생지다. 5월27일 경찰의 감시를 따돌린 재야인사 150여명이 3층 예배실에 모여 국본 발기인대회를 개최했다. 명동성당도 기독교회관도 성공회성당도 경찰에 봉쇄된 상황,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명동성당 바로 밑인 향린교회에는 경찰이 없었다. 계훈제·박형규·김승훈 등 150여 각계 인사들은 30분만에 모여들어 국본의 공동대표와 임원 선출, 결성선언문 낭독, 만세삼창 순으로 결성대회를 마쳤다. 경찰은 나중에야 급히 쫓아왔지만 행사는 끝난 뒤였다.

향린교회 정문 기둥에는 2007년 6월3일에 20주년을 기념해 붙인 ‘6월민주항쟁 기념비’가 있다. 명동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흔적이다. 또 이곳엔 ‘국가보안법 철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어 시대를 함께하고 있음을 내보인다.

6월 항쟁의 특징은 ‘다수의 행동’이다. ‘6월 항쟁의 꽃’이라고 표현되는 ‘넥타이부대의 행동’이었다. 넥타이부대는 명동을 중심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직장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명동은 금융권이 밀집한 곳으로, 명동성당 농성과 함께 이들의 가담이 큰 물줄기를 튼 것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은폐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직장인들이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결국 전두환 정권은 6·29 항복선언을 하게 됐다.

당시 학생들과 넥타이부대를 묶어준 매개는 노래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애국가’, ‘나의 살던 고향은’ 등은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노래였고, 여기에 ‘아침이슬’, 상록수’와 같은 대중적인 노래들이 서로를 묶어줬다.

6월 민주항쟁을 대표하는 노래는 ‘타는 목마름으로’이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 내 발길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 살아오는 저 푸른 자유의 추억 / 되살아나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 떨리는 선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이 /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후렴구의 ‘민주주의여 만세’는 모두의 바람이었고, 그 실천이 6월 항쟁이었다.

이 노래는 김지하의 시에 연세대 학생이던 이성현이 곡을 붙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타는 목마름’으로 표현했다. 단조의 비장함 속에 피 토하는 듯한 격정이 밀려온다. 김민기도 불렀고, 김광석도 불렀고, 안치환도 불렀다. 그만큼 갈망이 컸다는 의미일터다. 노래는 4분의4박자 단조다. 시의 가장 절절한 구절을 소리 높여 통곡하듯 부르도록 작곡됐다. 이후 작곡자 문승현이 기타와 올겐 연주의 장중한 분위기로 편곡했다.

내년이면 6·10 민주항쟁 30주년이다. 박종철과 이한열. 두 청춘의 희생이 밑바탕이 돼 이룬 6월 민주항쟁, 그리고 얻은 민주주의. 하지만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평지 광주전남6월항쟁기념사업회 상임대표는 “민주주의는 생활에서,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구현돼야 한다”며 “그래야 87년 6월 항쟁을 승리의 역사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완의 투쟁을 성공한 역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험난하지만 의미있는 길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지금 작은 생활속 실천 활동이 새로운 6월로 부활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울=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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