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로보타(Robota)가 온다 - 한근우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 전기과 교수
2026년 02월 12일(목) 00:20
인류는 인간을 대신해 고된 일을 수행할 ‘기계’를 창조하고자 끝없는 도전을 해왔다. 18세기 유럽을 풍미했던 오토마타(Automata)는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태엽과 톱니바퀴로 스스로 움직이던 오타마타는 비록 기능이 제한적이었으나 인간의 외형과 동작을 모방했다. 이는 ‘인간을 닮은 기계’ 즉, 로봇(Robot)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지금의 로봇은 어느 날 지구 밖 외계인이 인류에게 무상으로 전수한 기술이 아니었다. 수레바퀴와 지렛대, 풍차를 거쳐 진화해 인류의 희망사항이 응축되어 탄생한 결정체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로봇’이라는 단어의 뿌리는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는 그의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이 단어를 처음 선보였다. 체코어로 ‘강제 노동’ 또는 ‘노예’를 뜻하는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한 이 명칭은 로봇의 본질적인 숙명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차페크가 100여 년 전 상상한 로봇은 오늘날 기업의 생산 라인에서 벌어지는 풍경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있다. 극 중 파브리(엔지니어)는 헬레나(로봇을 동정하는 인물)에게 로봇을 만드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한다. “로봇 하나는 인간 노동자 두 사람 반의 몫을 하며, 효율성이 떨어지는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기계를 대체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비용 절감과 효율성 극대화라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미 100여년 전의 문학 작품 속에 예견되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봇의 이미지는 영화 ‘아이로봇’의 로봇 군단이나 ‘터미네이터’의 T시리즈 등 인간과 흡사한 이족보행 기계 따위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로봇은 훨씬 더 은밀하고 다양하게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다. 공장의 거대한 로봇 팔, 안방을 누비는 로봇 청소기, 주머니 속의 인공지능 시리(Siri), 그리고 방대한 데이터를 훑는 포털 사이트의 검색 로봇 등이다. 차페크의 작품 속 로봇처럼 인간과 똑같이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봇의 사전적 정의인 ‘어떤 작업이나 조작을 자동적으로 하는 기계 장치’로서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특정 부분을 대신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 라인에 최첨단 로봇을 전면 배치하는 현상은 프랑스의 전자 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의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라는 제목의 곡과 묘하게 교차되는 부분 있다. 로봇은 인간이 기피하는 험한 작업(Harder)을 묵묵히 수행하며, 인간의 숙련도를 넘어서는 정밀함(Better)과 24시간 쉬지 않는 속도(Faster), 그리고 지치지 않는 물리적 힘(Stronger)을 제공한다.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러다이트 운동이라는 노동자의 절박한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로봇 투입은 인구 절벽과 노동 인력 감소라는 거대한 사회적 파고에 대응하는 진화로 보는 이들도 있다. 인간의 근육을 대체한 로봇은 이제 생산 라인의 단순 노동자가 아닌 최적의 효율을 뽑아내는 ‘지능형 파트너’로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다시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이제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차페크의 소설 속 로봇은 결국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모한다. 이러한 희곡의 서사는 기술의 비약적 발전 뒤에 숨은 인류의 근원적인 공포를 대변한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며 노동 현장에서 인간을 배제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로봇은 인간을 모티브로 탄생했으며 인간의 지시에 따라 동작하는 도구다. 생산 라인이 ‘더 강하고 더 빠르게’ 변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로봇이 근육을 대신한다면 인간은 창의성과 공감, 그리고 윤리적 판단이라는 고차원적인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로봇은 더 이상 SF 영화 속의 환상이 아니다. 100년 전 차페크의 통찰이 오늘날 생산 라인에서 실현되고 있듯, 우리는 이제 기계와의 경쟁이 아닌 공존의 문법을 익혀야 한다. 효율성이라는 차가운 기계의 논리 속에 사람다움이라는 따뜻한 가치를 담아내는 일. 그것이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우리가 놓지 말아야하는 서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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