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흑백요리사에게 우리가 배운 것
2026년 02월 05일(목) 00:20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게 되리라고는 제작사도 국민도 몰랐다. 요리를 놓고 겨루는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원래 이런 제작물은 미국과 유럽, 일본에 흔했다. ‘마스터셰프’라는 외국 작품을 라이선스해서 한국에서도 제작한 적이 있다(이번에 ‘흑백요리사’에서 우승한 최강록셰프도 출연해서 우승했다).

아시다시피 당장 당대에도 셰프들이 등장해서 유명인의 냉장고를 주제로 요리 경쟁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하지만 ‘흑백요리사’의 파장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우승은커녕 초반에 탈락한 셰프들도 인기를 크게 얻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여기서 그걸 헤아려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승자 최강록의 발언에 주목한다.

“저는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국 각지에서 묵묵히, 이름 없이 자기 주방을 지키며 일하는 수많은 요리사 중 한 명일뿐입니다.”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 덧붙여 이런 말도 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건 그분들을 대표해서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서사가 완성됐다. 이것은 각본을 짜서 될 일이 아니다. 최강록이란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는데 여파가 컸다. 그의 품성에 대한 상찬이 이어졌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여진이 길게 이어진 까닭이다. 우승해서 잘 난, 외국 요리유학도 가고 누가 봐도 성공한 요리사의 인생으로 다른 세계에 살 것 같은 사람이 대중들의 마음을 ‘포섭’했다. 겸손과 인격으로 공감을 획득했다. 요리는 요리이고, 인생의 교훈으로 삼게 된 사람이 생겨났다.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나보다 어린 후배이지만 존경하게 됐다. 요리기술이야 놀라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는 그쪽으로는 최고가 아닐 수 있다. 우리는 공감할 때 그 사람과 나를 교집합 시킨다. 내가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나다.

무엇보다 저 수상소감에 단순하게 접근해보자. 사실, 셰프가 인기 직업이 되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저변과 실상은 대중이 상상하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호텔과 미쉐린 식당의 요리사? 어떻게 보면 백조의 발짓 같은 것이다. 손이 베이고 근골격계를 다치고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산재 판정 1위 직업은 아니지만(1위는 건설노동자), 산재 신청까지 가지 않는 정도로 다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게 요리사다.

주 5일을 얻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주 5일 하더라도 하루 열 몇 시간은 기본이다. 서로 양해 하에 초과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급식당일수록 노동과 직업이면서도 동시에 큰 꿈을 향한 수련의 시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오해하지 말 것은, 요즘은 대개 초과수당 등 근로기준을 지키는 곳이 대다수다).

월급은 얼마인가. 최저임금 언저리로 시작해서 10년을 해도 중소기업의 비슷한 경력에 비추면 많지 않다. 20년, 30년을 하면 오히려 중소기업 수준과 격차가 더 벌어진다. 몇몇 주목받는 셰프이거나, 매출이 워낙 좋은 식당에서 일하는 일부 인원이나 괜찮은 대접을 받는다. ‘청담동 연봉 1억 셰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대한민국 300만 식당종사원을 대표할 리 없다.

게다가 한국의 식당은 걸핏하면 망한다. 문 열고 1년 이상 버티는 식당이 얼마나 있을까. 임금 체불에 퇴직금을 못 받는 직원들이 허다하다. 얼마 전에도 아주 유명한 식당이 문을 닫게 되어 거기서 일하는 후배들의 상담 전화가 내게 걸려왔다. 임금이 6개월 밀렸고 퇴직금은 언감생심이었다. 정부에서 줄 체당금(대지급금)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이런 혜택도 몇 년은 일해야 좀 챙겨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식당이란 게 워낙 영세한 종목이고 이직이 잦아서 몇 달 정도 일한 상태에서 망하면 건질 게 거의 없다. 실업수당도 단기근속자는 불리하다는 건 다 아시는대로다. 폼 나는 대형식당, 고급식당처럼 이른바 셰프들이 일하는 식당일수록 더 빨리 망한다. 나가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폐업도 빠르다.

한번쯤 우리의 요리 환경, 식당의 풍경에 대해 들여다보시길 바란다. 하기야 식당뿐이겠는가. 최강록셰프의 말처럼, 어디선가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이름없는 요리사들을, 식당종사자들을 응원한다.

<음식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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